"신뢰가 손끝에서 흘렀다"…임윤찬·손민수, 한 무대 오른 사제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7월 23일, 오후 04:40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무대 위에 두 대의 피아노가 마주 보는 대신 바깥을 향해 나란히 놓였다. 두 연주자가 각자 연주에 집중하면서도 서로에게 시선을 둘 수 있도록 한 배치다. 이윽고 피아니스트 임윤찬(22)과 스승인 손민수(50)가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검은 수트에 나비 넥타이로 복장을 맞춘 모습이었다.

(사진=KBS교향악단)
(사진=KBS교향악단)
임윤찬은 13살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재교육원에 입학해 손민수를 사사했다. 손민수가 2023년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로 임용되자 임윤찬도 그를 따라갈 정도로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의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에서 두 사람의 무대가 꾸며졌다.

이날 1부는 KBS교향악단의 모차르트 ‘돈 조반니’ 서곡 연주로 시작했다. 드라마를 압축해 담은 작품으로, 힘찬 에너지와 극적 긴장감이 담긴 연주가 펼쳐졌다. 이 곡은 KBS교향악단과도 인연이 있다. 국립오페라단의 1962년 ‘돈 조반니’ 초연 당시 KBS교향악단의 초대 상임지휘자 임원식과 단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어진 무대는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0번’. 모차르트가 누이인 난네를과 함께 연주할 것을 염두에 두고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두 피아노가 경쟁하기보다 서로 호흡하고 대화하며 하나의 음악을 완성하는 협주곡으로, 스승과 제자가 함께 연주하기 알맞은 선곡이다.

두 피아노가 대화를 시작하자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긴장 속 적막에 빠져들었다.

같은 선율을 주고받을 때면 스승과 제자는 서로에게 시선을 두고 호흡을 맞췄고, 힘 있게 건반을 두드리며 동시에 고개를 드는 순간에는 두 사람 사이의 오랜 신뢰가 그대로 드러났다.

오케스트라 역시 두 연주자의 호흡과 두 피아노의 음색이 돋보이도록 배려하며 합을 맞췄다.

연주 중 임윤찬이 오른발로 리듬을 타거나 트레이드마크인 앞머리를 쓸어 넘기고, 왼손으로 박자를 그리는 모습도 관객에게 몰입감을 더했다.

곡이 절정으로 치달을수록 두 피아노의 소리는 주고받기를 반복하며 하나로 섞여갔다. 피날레에서 두 피아노는 단순히 속도감을 내기보단 밝고 가벼운 가운데 단단하며 빈틈이 없게 매듭을 지었다.

(사진=KBS교향악단)
(사진=KBS교향악단)
연주가 끝나자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인사했다. 곳곳에선 기립한 관객도 눈에 띄었다. 박수 소리가 그치지 않는 가운데, 무대 스태프는 두 의자를 피아노 한 대 앞으로 옮겼다. 손민수와 임윤찬은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았고, 바흐 칸타타를 앙코르로 들려주며 객석에 뜻밖의 선물을 안겼다.

이어진 2부는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이 채웠다. 이 곡은 드보르자크의 가장 낙관적인 교향곡으로 꼽히지만 밝은 가운데서도 단조가 자주 교차하는 곡이다. 이날 지휘봉을 잡은 스즈키 마사토는 일본을 대표하는 지휘자답게 시종일관 열정적인 지휘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트럼펫 팡파르로 열리는 4악장에서 곡이 마지막을 향해 행진할 때, 그의 지휘는 한층 힘을 더했다.

KBS교향악단 관계자는 “아름다운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된 이 작품은 삶에 대한 위로, 희망과 새로운 출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국민과 웃고 울며 70년 시간을 함께해 온 KBS교향악단을 자축하는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무대는 세대를 잇는 사제의 협연과 반세기를 넘어온 오케스트라의 시간이 만나, KBS교향악단 70주년에 걸맞은 품격 있는 여운을 남겼다.

(사진=KBS교향악단)
(사진=KBS교향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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