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상. (출처: 오걸휘,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1916년 7월 27일,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독창적 족적을 남긴 서양화가 이봉상이 태어났다. 한국 미술계에 구상 미술의 현대적 변용과 가능성을 제시하며 화단의 균형과 다변화를 이끌었던 예술가다.
그는 독학으로 미술을 익혀 10대 어린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며 '미술 신동'으로 일찍이 주목받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적 격동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으며 자신만의 확고한 조형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이봉상의 가장 큰 미술사적 업적은 서구 모더니즘 기법을 수용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토속적 색채와 온화한 서정성을 융합했다는 점이다. 1950년대에는 강렬한 색채와 거친 마티에르, 대담한 필치를 바탕으로 '한국적 야수파' 화풍을 선보였다. 페인팅 나이프를 활용해 물감을 두껍게 덧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산', '나무', '푸른 여인' 등 자연적 소재를 질감 있게 표현하며 대상의 내면적 생명력을 끌어올렸다. 이는 서구 모더니즘을 주체적으로 수용하면서도 한국 고유의 온화한 서정성을 잃지 않은 대표적 성취로 꼽힌다.
1960년대 들어서는 대상의 형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반추상 및 추상 양식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동양화의 산점투시 기법을 접목하는 등 다채로운 조형적 실험을 단행했으며, 구상과 추상이 대립하던 화단에 '신상(新象)'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1967년에는 '구상전' 창립을 주도해 추상미술이 풍미하던 당시 화단에 구상 회화의 현대적 변용 가능성을 알리고 화단의 균형을 잡았다.
그는 미술 교육자와 비평가로서도 크게 기여했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고, '이봉상회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수많은 신진 작가를 양성했다. 또한 활발한 비평 활동을 병행하며 한국 미술의 발전적 방향을 제시했다.
1970년 작고하기 전까지 이봉상은 화업을 통해 구상과 추상을 잇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수행했다.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유연한 예술적 모색을 펼친 의 삶과 캔버스 위 두터운 질감은 오늘날 한국 현대미술이 단단히 뿌리내리는 데 귀중한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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