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가 황혼기에 접어든 먼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비인간, 기술과 소멸의 문제를 따라간다. 가와카미 히로미는 열네 편의 연작소설을 통해 동일본 대지진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이 남긴 질문을 수천 년의 시간축 위에 놓는다.
인간이 최상위 포식자로 번성하던 시대가 끝난 뒤의 지구가 소설의 출발점이다. 남은 사람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작은 마을 단위로 흩어져 살고, 아이들은 공장에서 만들어져 '어머니'라 불리는 존재들의 손에서 자란다.
이 목가적이면서도 기묘한 풍경은 첫 작품 '유품'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강가로 목욕을 가는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오래된 신앙처럼 이어지는 의식이 세계의 질서를 보여준다.
죽은 뒤에야 유래를 알 수 있다는 설정도 이 세계를 받친다. 남편을 잃은 인물이 '닮음뼈'를 통해 그가 돌고래의 세포에서 태어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는 장면은 생과 종의 경계를 낯설게 돌려놓는다.
작품은 이런 장면을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화자와 문체가 완전히 다른 열네 편이 수백 년, 수천 년씩 시간을 건너뛰며 이어지고, 뒤로 갈수록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결속한다.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정체성을 흔드는 원초적 질문
'수선화'에서는 나보다 훨씬 젊은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일한 자아가 세대를 건너 이어지는 세계는 개인의 정체성과 시간의 감각을 뒤흔든다.
'춤추는 아이'는 강가와 숲, 초록빛 내음과 햇살 아래에서 전개되는 장면으로 분위기를 바꾼다. 한 아이가 춤을 추며 숲속으로 들어가고, 그 끝에서 다른 소녀와 마주치는 장면은 이 소설이 품은 원초적 감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리멤버'(Remember)는 더 노골적으로 생존과 공포를 밀어 올린다. 동물에게 동기화한 존재가 육식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고통과 의식의 끊김을 기억하는 대목은 인간 바깥의 감각을 정면으로 끌어들인다.
이 소설이 묻는 질문은 결국 다른 존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느냐다. '유랑'에 실린 "자신과 다른 존재를,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라는 문장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전체를 겨냥한다.
[신간]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보석처럼 빛나는 절망의 스캐닝… '쓸쓸함'을 시뮬레이션하는 기술의 언어
'인터뷰'(Interview)에 이르면 시선은 지구 자체의 감각으로 번져간다. 지구의 일부에 섞여 촉수를 뻗는 듯한 백일몽과 무의식의 혼돈을 말하는 대목은 세계를 바라보는 규모를 바꾼다.
'변화'는 절망을 색으로 스캐닝하는 상상력으로 나아간다. 엠과 유, 세스, 나오코의 절망이 다이아몬드와 루비, 에메랄드처럼 빛난다는 묘사는 감정을 기술과 감각의 언어로 옮긴다.
'운명'에서는 인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의 목소리가 전면에 선다. '쓸쓸하다'를 실감할 수는 없지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목소리는 인간 이후의 시간을 응시한다.
작가는 동일본 대지진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 사이에서 이 작품을 썼다. 스스로 만든 기술을 통제하지 못하는 인간, 자신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간이 어떤 미래를 만들지 묻는 문제의식이 서사의 밑바닥을 이룬다.
가와카미 히로미는 1996년 '뱀을 밟다'로 아쿠타가와상을, 2001년 '선생님의 가방'으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받았다. 이 소설은 2016년 첫 출간 때 일본의 환상문학상인 이즈미 교카상을 받았다. 2025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다.
△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이지수 옮김/ 428쪽
'큰 새에게 사로잡히지 않도록'은 인류가 황혼기에 접어든 먼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비인간, 기술과 소멸의 문제를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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