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의 언어학'은 말 한마디의 배열이 판단과 선택을 어떻게 흔드는지 심리언어학 실험으로 파고든다.
'설득의 언어학'은 말 한마디의 배열이 판단과 선택을 어떻게 흔드는지 심리언어학 실험으로 파고든다. 상드린 쥐페레와 스티브 오즈발, 파스칼 지각스는 프레이밍과 전제, 암시, 은유 같은 언어 현상 10가지를 따라가면서 일상 대화부터 광고와 정치 언어까지 설득의 작동 방식을 짚는다.
빵에 인공 첨가물이 5% 들어갔다고 쓰는지, 천연 재료가 95% 들어갔다고 쓰는지에 따라 소비자의 선택은 달라진다. 프로젝트를 "벌써 50% 끝냈다"고 말하느냐 "아직 50% 남았다"고 말하느냐도 듣는 이의 판단을 바꾼다. 책은 이런 미세한 표현 차이가 어떻게 인상을 바꾸는지 첫머리에서 곧바로 보여준다.
언어는 투명한 그릇이 아니다… '모세의 착각'이 파고드는 인지의 빈틈
언어는 현실을 옮기는 투명한 그릇이 아니다. 주의를 한쪽으로 몰고 상대의 해석 경로를 정하는 장치에 가깝다. 같은 사실이라도 어떤 말로 포장하느냐에 따라 설득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저자들은 이 논의를 추상 이론으로만 끌고 가지 않는다. 심리언어학이 언어학과 심리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어떤 질문을 던져왔는지 짚고, 일상 대화에서 자주 작동하는 언어 현상을 10개 갈래로 나눠 살핀다. 각 장에는 실험과 사례가 붙어 있어 말의 효과가 직감이 아니라 관찰 가능한 현상이라는 점을 밀어 올린다.
초반부에서는 주의를 빼앗는 언어 장치를 다룬다. 대표 사례로 제시되는 것은 이른바 '모세의 착각'이다. 질문 구조가 익숙한 정보와 결합하면 잘못된 전제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답하게 되는 과정을 통해, 언어가 인지의 빈틈을 어떻게 파고드는지 보여준다.
프레이밍 장에서는 같은 상황을 어떤 틀로 제시하느냐가 판단을 얼마나 크게 흔드는지 드러난다. 반쯤 찼는지 반쯤 비었는지, 누가 실수했는지 실수가 있었는지 같은 문장 차이는 책임과 손실, 능력의 인상을 전혀 다르게 남긴다. 숫자와 문법이 설득의 도구가 되는 이유가 여기서 선명해진다.
전제와 기정사실화에 관한 설명도 눈에 띈다. "프랑스 국왕은 대머리다"라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순간, 독자는 먼저 프랑스에 국왕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끌어안게 된다. 책은 이렇게 직접 말하지 않은 정보가 논쟁의 바깥으로 밀려나는 과정을 설득의 은밀한 기술로 읽어낸다.
암시적 의사소통을 다루는 대목은 전략적 모호함의 효용을 파고든다. 교통법규 위반 뒤 노골적으로 뇌물을 제안하는 말과 에둘러 다른 해결책을 묻는 말은 위험 부담부터 다르다. 저자들은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여지가 어떻게 화자를 보호하면서도 상대를 떠보는 수단이 되는지 분석한다.
'설득의 언어학'은 말 한마디의 배열이 판단과 선택을 어떻게 흔드는지 심리언어학 실험으로 파고든다.
따뜻한 음료가 사진 속 인상을 바꾼다… 감각과 '있잖아'가 만드는 대화의 리듬
정치 언어 사례도 빠지지 않는다. 로널드 레이건이 고령 논란을 되받아치며 상대 후보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비틀어 말한 장면은, 답변 하나가 쟁점의 프레임을 어떻게 뒤집는지 보여주는 예로 제시된다. 공격을 부인하는 형식을 취하면서도 실제로는 공격 효과를 내는 언어의 역설이 드러난다.
은유 장은 몸의 감각과 판단의 연결을 다룬다. 따뜻한 음료를 든 사람이 사진 속 인물을 더 다정하게 평가했다는 실험은, '따뜻한 사람' 같은 표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감각과 사고를 잇는 장치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가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몸의 경험과도 맞물려 있다는 뜻이다.
고정관념을 설명하는 방식도 구체적이다. 저자들은 뇌를 전구가 가득한 공간에 비유하며 특정 단어들이 반복될수록 연결이 강화된다고 설명한다. '젊은이'와 '이기적' 같은 조합이 자주 결합될수록 편견이 더 빠르게 떠오르는 구조를 언어 차원에서 읽어낸다.
사소해 보이는 담화 표지도 따로 다룬다. "있잖아" "그러니까" "뭐랄까" 같은 말은 흔히 군더더기로 취급되지만, 책은 이런 표현이 대화의 흐름과 사회적 관계를 조율하는 기능을 맡는다고 본다. 쓸모없어 보이는 작은 단어가 설득의 리듬을 만드는 셈이다.
"왜냐하면" 한 단어가 가진 마법… 가짜 정보의 시대, 언어적 조종에 맞서는 방어책
전문 용어의 효과를 살피는 장에서는 오히려 말이 어려울수록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짚는다. 기술 제품이 아닌 생활 제품을 전문 용어로 설명하면 소비자의 흥미가 낮아지고 구매 의향도 떨어졌다는 실험이 제시된다. 많이 아는 척하는 말투가 언제나 전문가의 권위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접속사의 위력은 복사기 앞 장면으로 압축된다. "왜냐하면" 뒤에 새로운 근거가 없어도 그 한 단어가 들어가면 요청이 더 타당하게 들린다는 실험 결과가 소개된다. 논증의 내용 못지않게 형식이 사람의 판단을 움직인다는 점을 가장 일상적인 장면으로 입증하는 대목이다.
후반부는 잘못된 정보와 그 확산 메커니즘으로 이어진다. 출처를 가려내기 어려운 이유, 픽션이 허위 정보를 학습시키는 과정, 한번 굳어진 믿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함께 다룬다. 설득의 기술을 익히는 문제와 조종당하지 않기 위한 방어가 같은 축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는 구성이다.
세 저자는 각각 언어학과 영어 언어학, 심리언어학을 연구해온 학자들이다. 번역은 프랑스어권 작품을 꾸준히 옮겨온 하현주가 맡았다. 책은 이론 개요보다 사례와 실험을 앞세워 학술 용어의 장벽을 낮추는 쪽을 택한다.
△ '설득의 언어학'/ 상드린 쥐페레·스티브 오즈발·파스칼 지각스 지음/ 하현주 옮김/ 296쪽
'설득의 언어학'은 말 한마디의 배열이 판단과 선택을 어떻게 흔드는지 심리언어학 실험으로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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