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평 정원 '덕암재'에서 보낸 3년… 계절의 감각이 바꾼 삶의 태도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28일, 오전 09:01

[신간] '백년의 정원사'
"이름 없는 꽃은 없다. 우리가 이름을 모를 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다.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모를 뿐이지" 9년 차 정원사이자 '백년의 정원사'를 쓴 저자의 생각을 압축하는 말이다. 책은 정원을 돌보는 시간이 한 사람의 시선과 삶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는지 따라간다.

저자 김용철은 충남 청양의 2000평대 정원 '덕암재'에서 보낸 3년의 기록을 통해 계절의 감각, 가족의 기억, 자연을 받아들이는 법을 함께 짚는다.

정원은 이 책에서 단순한 취미나 기술의 대상이 아니다. 꽃과 나무를 물감처럼 여기며 시작한 손길이 살아 있는 생명을 대하는 태도로 바뀌는 과정이 책의 첫 축을 이룬다.

김용철은 9년 넘게 정원을 가꿔온 시간을 바탕으로 2022년부터 2025년까지의 기록을 4부로 묶었다. 늦여름과 초가을, 늦가을, 늦겨울과 초봄, 초여름을 거치며 정원과 사람이 함께 변하는 흐름을 따라간다.

"나보다 오래 살 것을 심는다"… 증조할아버지부터 이어진 백년의 유산
계절 장면도 구체적이다. 봄의 튤립과 수선화, 밤공기를 채우는 야래향, 서둘러 잎을 떨구는 엄나무가 차례로 놓이며 정원은 눈앞 풍경이자 몸으로 겪는 시간으로 읽힌다.

그 시간은 정원을 보는 관점도 바꾼다. 저자는 가드닝을 "모니터도 캔버스도 아닌, 지붕도 없는 험악한 곳에 새롭고 경이로운 그림을 그리는 창작행위"로 받아들이면서도,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꽃과 나무를 생명으로 보게 됐다고 적는다.

정원은 혼자 가꾸는 공간으로도 그려지지 않는다. 나무를 심는 아버지, 꽃을 돌보는 어머니, 친구를 데려오는 아이들의 손길이 더해지며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조화가 쌓인다는 점이 반복해서 드러난다.

'덕암재'는 세대의 시간이 겹친 장소다. 집안사람들이 대대로 살던 곳이라는 설명처럼 어른들의 추억이 남아 있고, 어머니가 가꾸던 접시꽃과 아버지가 태어나기 전 심어진 목단도 지금의 정원 안에 함께 놓여 있다.

[신간] '백년의 정원사'

비에 눕는 목수국과 잡초가 건넨 가르침… 통제 대신 자연스러움을 배우다
증조할아버지가 심어 백년을 넘긴 아름드리나무는 책의 제목과 가장 직접 맞닿는 장면이다. 정원사가 십년, 백년을 내다보며 손을 움직여야 한다는 문장은 결국 지금의 노동이 다음 세대의 풍경을 만든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의 정원은 기억의 장소이면서 유산의 자리이기도 하다. 저자가 나보다 오래 살 것을 심는다고 말하는 대목에는 당장 눈앞의 완성보다 오래 남을 존재를 돌보는 시간이 담겨 있다.

목차 구성도 이런 흐름을 받친다. 1부 '씨앗을 품고 가을로 걸어가는 정원사', 2부 '사계의 순환, 정원이 건네주는 것들', 3부 '뿌리는 깊어지고 꽃은 피어나고', 4부 '백년의 정원에서 보낸 기록'은 정원의 변화와 저자의 시선을 함께 밀어 올린다.

책의 또 다른 축은 자연을 통제하려던 마음이 물러나는 과정이다. 잡초는 뽑아도 끝이 없고, 목수국은 비만 오면 쓰러지며, 달리아는 꽃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는 경험이 이어지면서 정원은 관리의 대상만으로 남지 않는다.

법학도·디자이너에서 정원사로… 단순 기술을 넘어 삶의 감각을 건네는 기록
저자는 그 과정에서 완성이나 정돈 같은 사람의 기준을 내려놓는다.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잡초와 빗물에 눕는 꽃도 그 자체로 자연스럽다는 인식은 정원을 보는 시선에서 삶을 보는 시선으로 번져간다.

첫서리가 내린 날 움직임을 멈춘 식물들을 보며 삶의 자연스러움을 받아들이는 장면도 나온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고백은 정원 일기와 개인의 시간이 맞물리는 대목이다.

저자의 이력 역시 책의 성격을 또렷하게 만든다. 법대를 졸업한 뒤 다시 디자인을 공부했고, 지금은 국립한밭대학교 시각영상디자인학과 교수이자 정원용품 기업 '헤이데이'를 창업한 9년 차 정원사로 살아가고 있다.

정원 가꾸기의 기술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은 식물과 함께 지내며 발견한 작은 기쁨, 실패를 대하는 태도,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감각을 정원이라는 공간에 겹쳐 놓는다.

△ '백년의 정원사'/ 김용철 지음/ 249쪽

9년 차 정원사이자 '백년의 정원사'를 쓴 저자의 생각을 압축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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