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 "드라마 대사에는 우리를 위로하는 삶의 지혜가 담겼죠" [책과 사람]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7월 31일, 오후 02:00

정덕현 문화평론가. © 뉴스1 김정한 기자

20여 년간 K드라마의 곁을 지키며 대중의 희로애락을 읽어온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가 펜 끝에 온기를 담았다. 2004년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아련한 외침부터 2026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에 이르기까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던 60개의 명대사를 가려 뽑아 필사집을 세상에 내놨다.

이 책은 단순히 인기 대사를 모아둔 모음집이 아니다. 삶과 사랑, 가족과 위로라는 네 개의 길목마다 저자가 직접 써 내려간 짤막한 에세이를 보태어, 모니터 속 문장이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의 현실과 어떻게 맞닿는지를 다정하게 짚어낸다.

손끝으로 대사를 직접 옮겨 적으며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길 바란다는 그를 만나 드라마 속 한 줄의 문장이 지닌 위대한 힘과 책에 담긴 진심을 들어보았다.

-이번 드라마 에세이를 엮어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늘 TV 옆에 붙어 살 만큼 대중문화를 좋아했다. 그동안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평론이나 비평의 대상으로서 다소 천대받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웠다. 작가들이 대사 한 줄을 쓰기 위해 쏟아붓는 공과 집념을 알기에 그 의도와 감정을 디테일하게 짚어내고 알리고 싶었다.

-책에 담긴 대사나 장면을 포착해 내는 기준이 있다면.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평하기보다는 한 회에 10분 남짓한 특정 장면과 대사에 집중한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말이라도 그 맥락 속에 들어가면 강력한 명대사가 된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독자라도 일상적인 경험과 맞물려 충분히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글을 풀어냈다.

-문체가 무겁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감성이 돋보이는데.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감정이다. 필자가 먼저 감정을 과하게 터뜨리면 읽는 이의 감입이 오히려 방해받는다. 감정이 터지기 직전의 선에서 멈추어 주어야 독자가 비로소 자기 안의 정서와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다.

-글을 쓰기 위한 특별한 루틴이나 모드 전환 방식은.

▶새벽 시간을 활용한다. 밤 9시에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9시까지 집중해서 글을 쓴다. 비몽사몽인 상황에서 감수성이 올라오는 시간에 맞춰 에세이 모드로 내 상태를 세팅한다. 이 시간 동안 스스로 감성을 끌어올리는 과정 자체가 삶에 큰 환기가 된다.

-국문과 졸업 후 전공과 아주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대학 졸업 후 시나리오 학원에 다니며 글을 썼다. 진로 홍보팀, 게임 회사, 의학 잡지 편집장, 광고 기획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당시에는 시간이 허비되는 것 같았지만, 돌이켜보면 다양한 형태의 글을 훈련하는 귀한 베이스가 됐다.

-많은 직업을 거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무엇인가.

▶결국 목적은 내가 하려는 메시지를 상대방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잡지, 사보, 홍보문, 칼럼 등 각 틀에 맞는 글쓰기 훈련이 되었기에, 읽는 사람의 시선을 고민하며 글을 쓰는 지금의 자산이 됐다.

'누구에게나 가슴을 후벼파는 대사 한마디가 있다' (서교책방 제공)


-현장에서 체감하는 한국 드라마만의 독보적인 특징은.

▶한국 드라마는 '감정의 블록버스터'다. 서구 콘텐츠가 스펙터클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의 부딪힘을 극대화한다. 최근 SF나 액션 등 장르물이 결합하더라도 그 중심에는 특유의 가족애와 멜로 정서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 비해 드라마를 소비하는 대중의 태도에 변화가 있는가.

▶과거에는 장르의 문법을 벗어나면 비판받았지만, 지금 대중은 복합 장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한 작품 안에서 공포와 멜로, 코미디가 뒤섞여도 부분적인 재미와 완성도가 높다면 충분히 즐긴다. 콘텐츠 소비 감각이 훨씬 다채롭고 영민해졌다.

-드라마 작가들과의 특별한 인연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드라마 비평글을 매일 쓰다 보니 작가들에게 직접 고맙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작업실에 갇혀 고독하게 글을 쓰다가 내 글을 보고 용기를 얻어 다시 펜을 잡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평론가로서 커다란 보람과 감동을 느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장기적인 작업이나 목표는.

▶드라마 작가별 아카이빙 작업을 꼭 해보고 싶다. 한국 드라마의 성장은 작가 중심의 제작 시스템 덕분이었음에도 작가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다. 작가별 세계관과 작품의 의미를 제대로 기록해 묶어낸다면 한국 대중문화에 어마어마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접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멀리서나마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응원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매일 살아가는 게 쉽지 않고 피로한 현대인들이 이 책을 읽는 짧은 시간만큼은 근심을 잊고, 자기 안의 감정을 다정하게 다독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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