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피아노가 건네는 연결과 구원[문화대상 이 작품]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04일, 오전 08:42

[최승연 공연칼럼니스트] 뮤지컬 ‘피아노의 숲’이 대구와 광주에서 트라이아웃 공연을 마쳤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생경한 ‘트라이아웃’은, 영미권 생태계에서 본공연 진출 여부를 가르는 검증 단계로 정착돼 있다. 연출, 음악, 디자인 전체를 완성형으로 결합해 정식 개막 전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프로덕션의 비전을 조율하는 과정이다.

뮤지컬 '피아노의 숲'의 한 장면(사진=대구시립극단)
뮤지컬 '피아노의 숲'의 한 장면(사진=대구시립극단)
‘피아노의 숲’의 행보가 눈에 띄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재 국내에서 리딩 공연은 뮤지컬의 초기 개발 단계로 정착되어 있지만, 대극장 창작이 어려워 트라이아웃 단계는 건너뛰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2014년 워크아웃을 겪은 ‘뮤지컬 해븐’ 박용호 대표가 제작을 주관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요소다. 중극장 규모의 ‘마이 스케어리 걸’(2009), ‘번지점프를 하다’(2012) 이후 14년 만에 내놓는 해븐프로덕션의 ‘대극장 창작 신작’이다.

그러나 이 모든 작품 외적 의미는 무대 위 작품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피아노의 숲’에는 고유성이 있다. 공연은 엘리트 음악가 가문의 슈헤이(천관우)와 천재성을 타고난 창녀의 아들 카이(이휘종)가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다.

전 세계 누적 판매 700만 부를 기록한 일본의 인기 만화 ‘피아노의 숲’(잇시키 마코토)를 원작으로, 어린 시절의 만남부터 각자의 길을 걷는 성인 시절까지 약 2시간의 런타임에 녹였다. 원작의 후반부 전체를 차지하는 쇼팽 콩쿠르 여정을 흔적으로만 남기고, 학교 음악 선생이 된 슈헤이가 학생들과 함께 미국 작곡가 조셉 이스트번 위너의 ‘나의 작은 갈색 병’을 연주하는 장면을 결말로 완성했다.

공연의 지향점은 원작과 다른 이 결말에 육화되어 있다. 카이의 스승이자 불운한 천재 피아니스트 아지노 소스케(박지훈)가 편곡한 ‘나의 작은 갈색 병’을, 버려진 숲의 피아노로 카이가 연주하고 성인 슈헤이가 학생들과 함께 이어받는 전체 흐름은 단절 대신 ‘연결’을, 경쟁과 음모 대신 ‘인정’을, 개인 대신 ‘공동체’의 힘을 포괄한다. 이 결말에는 아지노와 카이도 공존해 있다.

오케스트라 피트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서 같은 곡을 환영처럼 연주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공연의 최종 심급을 의미화한다. 숲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음악의 신’의 현현, 구원이다. 외적인 기술보다 ‘나만의 음악’을 창발할 수 있는 내면의 성숙이 예술의 완성을 이끈다는 테마가 생생한 감각으로 전달된다.

이 전체 흐름을 6대의 업라이트 피아노로 유려하게 이끄는 연출(마이클 펜티먼) 콘셉트는 공연의 핵심이다. 극도로 절제된 영상과 조명은 배우의 얼굴보다 장면의 미장센을 미학적으로 강조하며, 장면을 연결하는 앙상블의 합은 공연의 테마를 감각으로 전이한다.

아이리시 선율에 조각된 라이트 모티프 ‘피아노의 숲’, 클래식으로 편곡된 테마 음악 ‘나의 작은 갈색 병’이 음악적으로 통합되는 방식(작곡 바너비 레이스, 편곡 이진욱), 그리고 모차르트, 베토벤, 쇼팽이 카이의 상상 속에서 키치하게 재현되는 양상도 흥미롭다. 음악과 미장센의 본질로 대극장 뮤지컬의 해법을 보여준 ‘피아노의 숲’은 본공연으로 보완되며 또 하나의 글로벌 창작 프로젝트로 발전될 것이다.

‘피아노의 숲’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의 초청작으로, 7월 대구문화예술회관(5~12일)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25~26일)에서 공연됐다.

최승연 공연칼럼니스트
최승연 공연칼럼니스트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