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에 린치에 가담한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거든"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8월 04일, 오전 09:01

'더 트리스'는 미시시피 작은 마을에서 잇따르는 기이한 연쇄살인을 따라가며 린치의 역사가 남긴 폭력과 복수의 고리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더 트리스'는 미시시피 작은 마을에서 잇따르는 기이한 연쇄살인을 따라가며 린치의 역사가 남긴 폭력과 복수의 고리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퍼시벌 에버렛은 사라졌다 나타나는 시신과 두 흑인 특별수사관의 추적을 앞세워 수백 년 이어진 혐오가 어떻게 현재형 범죄로 되돌아오는지 짚는다.

한 가정집에서 백인 남자와 흑인 소년이 한 쌍으로 죽은 채 발견되면서 소설은 시작한다. 목에는 가시철사가 감기고 안구까지 훼손된 시신 옆에는 잘린 고환을 쥔 흑인 소년의 시신이 놓인다. 그런데 검시로 넘긴 소년의 시신은 다시 사라지고, 비슷한 방식의 다음 살인 현장에 또 모습을 드러낸다.

이 기이한 연쇄살인은 단순한 미스터리로 머물지 않는다. 소설은 죽은 자가 돌아오는 듯한 장면을 발판 삼아 린치의 역사와 그 역사에 얽힌 가계의 죄를 현재의 사건으로 끌어낸다. 제목 '더 트리스'가 가리키는 것도 한 세대가 아니라 오래 이어진 가계도와 폭력의 계보다.

미시시피주의 작은 마을 머니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 복수가 겨누는 가계도
배경은 흑인 혐오가 공공연하게 남아 있는 미시시피주의 작은 마을 머니다. 백인 남자가 흑인과 함께 죽은 채 발견되고, 사라진 시신이 다시 사건 현장에 나타나는 일이 이어지자 마을은 공포에 휩싸인다. 살인은 한 번의 충격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공동체를 흔든다.

수사는 미시시피주 수사국의 두 흑인 특별수사관이 맡는다. 짐과 에드는 마을 곳곳을 훑으며 살해당한 이들의 주변과 지역의 오래된 적대 관계를 더듬는다. 그 과정에서 사건은 개별 범행이 아니라 지역사회가 외면해온 폭력의 기록과 맞물려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죽은 이들은 우연히 같은 방식으로 희생된 인물들이 아니다. 사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살해당한 남자들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까지 이어지는 만행과 맞닿는다. 현재의 피살은 수세대에 걸쳐 누적된 모욕과 가해의 반대편에서 터져 나온 복수로 읽힌다.

수사관들이 끝내 찾아가는 인물은 마을의 사정을 꿰고 있는 105세 노인 마마 Z다. 마마 Z는 사건을 단순한 범죄가 아니라 이 지역 전체가 축적해온 린치의 역사와 연결해 바라본다. 이 노인의 시선은 소설이 왜 현재의 사건을 과거의 집단 폭력과 묶는지 설명하는 축이 된다.

소설에서 '더 트리스'는 문자 그대로 가족의 나무이자 린치의 계보다. 한쪽에는 수백 년 동안 세대를 바꿔가며 이어진 차별과 혐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그 시간만큼 쌓인 모욕과 피해가 놓인다. 사건은 한 개인의 원한보다 가계와 지역 전체에 스며든 폭력의 전승을 겨눈다.

퍼시벌 에버렛은 복수의 장면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흑인에게 가해지던 위협과 공격을 백인 쪽으로 되돌려 놓으며, 늘 일상처럼 작동해온 공포를 뒤집어 체감하게 한다. 살인이 날씨나 공기, 피할 수 없는 재앙처럼 번져가는 이미지는 그 반전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 소설에서 복수는 특정 범인의 의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가족 중에 린치에 가담한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거든"이라는 말처럼, 폭력은 개인을 넘어 혈연과 공동체의 기억 속에 남아 전해진다. 그래서 사건은 한 사람의 악행보다 더 오래된 구조를 겨냥한 응답처럼 보인다.

중반부의 시선도 같은 문제의식을 밀어 올린다. 피해 남성과 여성들의 정체성이 죽음의 유사성 속에서 한꺼번에 지워진다는 대목은 린치를 하나의 범죄를 넘어 관행이자 징후로 본다. 개별 희생을 숫자로 밀어버린 역사야말로 이 소설이 되살려 묻는 대상이다.

'더 트리스'는 미시시피 작은 마을에서 잇따르는 기이한 연쇄살인을 따라가며 린치의 역사가 남긴 폭력과 복수의 고리를 정면으로 파고든다.

공포와 풍자가 겹치는 서술 … 퍼시벌 에버렛이 묻는 현재의 혐오
'더 트리스'의 장면은 잔혹하지만 서술의 결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시신안치실에서 사라지는 소년의 시신, 또 다른 현장에 다시 나타나는 죽은 몸은 공포를 밀어 올리면서도 현실감각을 비틀어 놓는다. 그 비틀림은 비극과 블랙코미디가 맞물린 분위기를 만든다.

대화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칼날이다. 짐과 에드가 겪는 말들은 노골적인 혐오, 시대착오적 무지,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 마을의 공기를 그대로 드러낸다. 21세기라는 현재 시점을 입에 올리면서도 과거의 질서에 갇힌 지역의 민낯이 그 안에서 드러난다.

풍자는 인권과 폭력의 언어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두드러진다. 허버타가 "이번 사건들에는 다소의 인권 침해가 수반된 것 같아서요"라고 말하자 마마 Z는 "인권이 침해당하려면 애초에 침해당할 인권을 지니고 있어야 하니까 여쭤본 겁니다"라고 되받는다. 짧은 문답 하나가 누가 인간으로 인정받아왔는지, 누가 그 바깥에 놓였는지를 압축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수사극의 리듬은 사건 해결만을 향하지 않는다. 한 장면의 기괴함과 다음 장면의 언어유희가 겹치면서, 소설은 범인을 좇는 긴장보다 혐오의 구조가 어떻게 유지돼왔는지를 더 오래 들여다보게 만든다. 공포와 코미디가 교차하는 형식 자체가 역사적 폭력의 비틀린 지속성을 비춘다.

퍼시벌 에버렛은 1983년 데뷔한 뒤 20편이 넘는 장편소설을 발표해왔다. 그의 작품세계에는 인종차별과 혐오가 놓여 있다. 국내에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흑인 노예의 시점에서 다시 쓴 '제임스'가 2025년 처음 소개됐고, 이번에는 흑인 혐오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린치를 정면에 세운 '더 트리스'가 뒤를 잇는다.

△ '더 트리스'/ 퍼시벌 에버렛 지음/ 송혜리 옮김

[신간] '더 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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