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자 ‘토르소’(Torso·1975 사진=가나아트)
시작이라면 20대 초반이던 1947년 근대조각의 선구자던 윤호중·윤경렬을 사사하면서부터다. 1949년 홍익대가 미술학부를 창설하자 조각과 제1회 입학생이 됐고 1955년 졸업했다. 한국전쟁, 그 생사의 위기를 뚫어낸 건 물론이다. 이후에는 척박하기 짝이 없던 한국 조각계의 중심으로 섰다.
무엇보다 공공영역에서 돋보였다. 행주산성 권율 장군 행주대첩비, 다산 정약용 동상,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등 역사·시대정신을 꾹꾹 눌러낸 작업이었다. 그렇다고 선이 굵고 단단한 작품만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자연·모성 등 생명에 기반을 둔 특유의 ‘부드러운 곡선 미학’이 도드라졌는데. 여인의 몸을 매끈하고 세련된 굴곡으로 빼낸 ‘토르소’(Torso·1975)가 그중 한 점이다.
강하지만 유연한 이 작가세계가 후배 여성 조각가에게 막대한 힘이 된 건 물론이다. 정신적으로만이 아니었다. 1989년 사재를 털어 재단을 만들고 제정한 ‘석주미술상’은 실질적인 지표가 됐다. 한국 유일의 여성미술상으로 지금껏 말이다.
8월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서 여는 ‘별처럼 남은 이름, 석주 윤영자 10주기 기념전’에서 볼 수 있다. 작가의 92년 아카이브와 대표작 20여 점, 여기에 역대 ‘석주미술상 수상작가’ 24명이 내놓은 작품을 함께 꾸렸다. 스테인리스스틸, 27×21×92㎝. 가나아트 제공.
윤영자 ‘리듬’(Rhythm·2007). 대리석, 37×15×104㎝.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별처럼 남은 이름, 석주 윤영자 10주기 기념전’에 나왔다(사진=가나아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