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 마분지, 잘라낸 금속판…삶은 그보다 더 무겁더라 [e갤러리]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06일, 오후 06:42

김진열 ‘출발선’(2011 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진열 ‘출발선’(2011 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얼핏 맹수인가 했다. 선 굵은 몸체에 붙인 조각난 근육이 잔뜩 성이 나 있으니까. 하지만 푹 숙인 머리에서 질끈 감긴 눈과 꾹 다문 입을 본 뒤 장르가 뒤집혔다. 강인한 외형이 무거운 비감으로 바뀐 거다.

작가 김진열(74)은 사람이 살게 하는 삶의 질료를 형상화한다. 꿈, 기대, 희망 등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표현은 정반대. 깨진 꿈, 틀어진 기대, 무너진 희망, 그 좌절의 흔적을 질펀하게 꺼내놓는 거다. 적어도 작가의 작업에 빳빳이 고개를 세우고 행진하는 듯한 누군가의 모습은 없다는 얘기다. 에두르지도 않는다. 바로 코앞에 들이댄다. 대범하게 끊어내고 투박하게 뭉쳐낸 인물상으로 말이다.

두꺼운 마분지, 잘라낸 금속판을 이어붙인 뒤 묵직하게 색을 입힌 몸에서는 자연스럽게 저들이, 아니 우리가 처한 시대와 현실이 읽혔다. 생명과 존재, 노동과 소외 등의 화두가 그대로 전달됐다고 할까. 이제 곧 부딪쳐야 할, 보이지 않는 위압이 막아선 ‘출발선’(2011) 앞에 웅크린 게 과연 누구인가 알아챈 거다. 하지만 이내 얼굴을 들고 달려나가지 않을까. 그것이 작가의 작업이니까.

8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서 여는 기획전 ‘김진열 아카이브: 일어나다 받들다 보듬다’에서 볼 수 있다. 1986년부터 원주를 기반으로 활동해온 작가의 삶과 작업을 작품 60여 점, 사진·노트·전시자료 등 기록물 70여 점으로 풀어놨다. 혼합재료, 73×110㎝.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김진열 ‘낡은 의자’(2012), 합지·금속판에 아크릴릭·혼합재료, 113×89㎝(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진열 ‘낡은 의자’(2012), 합지·금속판에 아크릴릭·혼합재료, 113×89㎝(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진열 ‘달맞이꽃’(1983), 철판·마분지 배접에 아크릴릭, 76×74㎝(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김진열 ‘달맞이꽃’(1983), 철판·마분지 배접에 아크릴릭, 76×74㎝(사진=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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