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알머슨 그림 속에 들어온 듯…눈이 즐겁고 마음이 따뜻한 ‘리나, 슈퍼히어로’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09일, 오후 11:42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형형색색의 꽃으로 뒤덮인 무대 위.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은 듯한 이곳에 11살 소녀 리나와 동생 미노가 등장했다. 할머니의 꽃밭을 망가뜨린 건 온몸에 쓰레기를 덕지덕지 붙인 ‘붙어붙어’ 대마왕. 리나는 꽃밭을 되찾기 위해 미노와 함께 대마왕을 물리치기로 결심한다. “너희들의 파워를 모아줘. 매직 매직 플라워 매직, 붕붕!” 힘찬 주문과 함께 환상적인 모험이 시작됐다.

가족 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의 한 장면(사진=두비컴).
가족 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의 한 장면(사진=두비컴).
‘행복을 그리는 화가’ 에바 알머슨의 작품 세계를 무대로 확장한 창작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가 오는 23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꽃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리나가 동생 미노, 로봇 친구 딩동과 함께 망가진 꽃밭을 되살리기 위해 스케치북 속으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쓰레기 괴물들과 맞서는 여정을 통해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는 용기 등의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한다.

이번 공연에는 알머슨이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해 한국 창작진과 1년여간 작품을 개발했다. 주인공 리나를 비롯한 캐릭터들도 공연을 위해 새롭게 탄생했다. DMZ 공연 페스타 총감독을 역임한 최광일이 예술감독을 맡았고, ‘친구의 전설’ 등 가족 뮤지컬 제작에 참여해 온 조재국이 연출을 맡았다. 대본은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와 ‘딩동댕 유치원’, 뮤지컬 ‘전천당’ 등을 집필한 박수경 작가가 썼다.

가족 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의 한 장면(사진=두비컴).
가족 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의 한 장면(사진=두비컴).
작품의 가장 큰 묘미는 알머슨의 그림 속으로 들어온 듯한 무대다. 그의 화폭을 닮은 꽃과 나무가 배경 영상을 가득 채우고, 형광색을 활용한 무대와 소품이 쉴 새 없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현실과 스케치북 속 세계를 이어주는 커다란 하트 모양의 꽃문 ‘하트 포털’은 등장할 때마다 무대를 한층 화사하게 물들인다. “너희들의 세상을 쓰레기로부터 지켜줄게”라는 대사와 함께 노란 꽃잎이 비처럼 쏟아지고, 어둠 속에서는 배우들이 형광빛 상모를 힘차게 돌리며 화려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환경 문제를 형상화한 괴물들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재치 있게 풀어냈다.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먹고 그물에 뒤덮인 탓에 괴물로 오해받은 ‘먹어먹어 거북이’, 깊은 정글의 나무를 마구 베어 숲속 동물들을 아프게 하는 인간을 형상화한 ‘베어베어 괴물’ 등이 차례로 등장한다. 어린이들에게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해양 쓰레기와 산림 파괴 문제를 친숙한 캐릭터와 모험 이야기로 풀어냈다.

가족 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의 한 장면(사진=두비컴).
가족 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의 한 장면(사진=두비컴).
리나와 미노, 딩동이 괴물들을 물리치고 숲과 바다를 되찾을 때마다 객석의 어린이들도 조금씩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을 거야”, “이제부터 아껴 쓸 거야”라는 말은 어느새 객석으로 번진다. 작품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거창한 능력을 가진 영웅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키고 바꾸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신나는 모험을 따라 웃던 아이들도 공연장을 나설 때는 작은 약속 하나를 품게 된다. 바다의 거북이가 아프지 않도록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다. 무대 위에서 세상을 구한 건 리나였지만, 공연이 끝난 뒤 그 임무를 이어받는 건 객석의 아이들이다.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일은 그런 작은 마음 하나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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