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는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의 ‘일이 사라진 세상’(다산초당)과 프랑스 철학자 에릭 사댕이 쓴 ‘멸종 위기의 사고’(헤이북스)다. 두 책은 기술이 인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것인가를 넘어, 일하고 생각하는 능력까지 AI에 맡긴 뒤 인간에게 무엇이 남게 될지를 묻는다.
인공지능(AI)이 계약서를 검토하고 질병을 진단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세상이 됐다(사진=생성형 AI).
‘일이 사라진 세상’에서 저자는 AI와 자동화가 인간의 노동을 완전히 대신한 미래를 상상하며 “출근하지 않는 세상은 자유로운 낙원일까, 우아한 감옥일까”라고 묻는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단순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다. 지금까지 일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사회 안에서 자신의 역할과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노동의 소멸은 소득원의 상실을 넘어 삶의 의미와 사회 속 자신의 자리를 잃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왔다는 낙관론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AI가 모든 직업을 없애지 않더라도 상당수의 좋은 일자리를 줄이고 일의 구조와 의미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기술이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킨다고 해서 곧바로 자유로운 삶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의 관심은 ‘앞으로 얼마나 덜 일하게 될 것인가’에 머물지 않는다. 일이 사라진 뒤 인간은 어디에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찾을 것인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AI는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인간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쓸모없다’는 감각을 잊기 위해 오락과 알코올 같은 위안에 기대지만, 어떤 위안도 ‘필요한 존재’로 살아가는 기쁨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멸종 위기의 사고’는 AI가 인간의 능력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내려놓고 있다고 진단한다. 챗GPT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AI에 맡기면 창의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글을 읽고 쓰고 창작하는 일,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까지 AI에 넘기기 시작한 것이다.
저자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이 과정이 강요가 아닌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AI가 즉시 답을 내놓는 동안 인간은 직접 자료를 찾고 출처를 따지고 비교하며 결론을 내리는 수고를 덜게 된다. 오래 학습하며 쌓아온 번역가와 교사, 배우, 성우 등의 전문성과 창의성도 AI가 생산한 값싼 결과물과 경쟁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단순히 직업의 소멸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생각하는 즐거움과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잃는 ‘사고의 사막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렇다고 AI를 거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저자가 요구하는 것은 기술에 끌려가기보다 AI와의 관계를 인간이 주도적으로 설정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노동 현장에서 시스템 사용을 거부하거나 법적 대응에 나서는 등 구체적인 행동 방안도 제시한다.
AI는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도구 가운데 하나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에릭 사댕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무조건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자각과 선택, 행동”이라며 인간의 주체적인 태도를 강조한다. 이진우 교수는 “스스로 생각하고 새롭게 시작하는 능력만이 AI 시대에 우리가 지켜야 할 힘이며,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해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