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워크스워크스)
아파트는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이자 많은 이들에게 어린 시절과 일상의 기억이 축적된 장소다. 작가에게도 반복해서 지나던 현관과 복도, 문과 창문은 너무 익숙해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일상의 풍경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떠올린 공간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일부는 희미해지고 일부는 어린 시절의 감정에 따라 강조됐으며, 서로 다른 시기의 장면이 하나의 이미지 안에서 겹쳐졌다. 선리는 이처럼 기억 속에서 다시 구성된 아파트를 전시장 안으로 옮겨온다.
작업은 올해 초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아파트를 다시 찾으면서 구체화됐다. 오래된 계단과 복도, 현관과 창문은 과거를 고스란히 보존한 장소라기보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풍경으로 다가왔다. 익숙했던 모습은 더 이상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고 희미해진 부분과 새롭게 보이는 장면들이 함께 존재했다. 작가는 그 미묘한 간극을 따라 아파트 곳곳을 살피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장면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 여정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 ‘Blue APT’다. 사진 속에서는 특정한 개인의 기억을 가리키는 좌표가 지워지고 오래된 벽의 색과 복도의 빛, 반복되는 구조와 표면이 남는다. 개인적인 기억에서 출발한 아파트가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기억을 포개볼 수 있는 풍경으로 확장되는 지점이다.
(사진=워크스워크스)
창문과 거울은 지나간 시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여준다. 창문은 내부를 보여주면서도 관객을 일정한 거리 밖에 머물게 한다. 지나간 시간은 바라볼 수는 있어도 다시 들어갈 수 없는 대상임을 암시한다. 흐린 거울을 사용한 ‘Crying Mirror’ 역시 현실을 선명하게 되돌려주지 않는다. 관객은 불완전한 반사 이미지 위에 자신의 기억을 겹쳐 보며 작가의 공간을 바라보는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된다.
‘Untitled APT (room)’과 ‘Blue APT (bed)’에서 방과 침대 역시 단순한 사적 공간을 넘어선다. 익숙한 사물들이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를 통해 기억의 불완전한 구조를 드러내고, 관객은 낯선 구조 앞에서 안과 밖, 휴식과 긴장, 방과 욕실처럼 서로 다른 감각들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것은 기억이 현실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감정이 중첩되며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는 관점이다. 익숙한 공간의 사물과 표면을 통해 사라진 부분과 남겨진 흔적 사이에서 새로운 장면이 만들어지고, 관객은 전시장을 거닐며 작가의 기억을 따라가는 동시에 자신이 한때 머물렀던 집과 그 안에 남아 있는 시간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정형섭 워크스워크스 대표는 “이번 전시는 실제 공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고 다시 구성되는 기억의 방식을 공간으로 보여준다”며 “작가의 기억에서 출발한 아파트가 관객이 자신의 집과 시간을 떠올리는 장소로 확장된다는 점이 이번 전시의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선리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일상적인 공간에서 경험되는 긴장감과 미세한 신체적 감각을 입체와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탐구해온 작가다. 초기에는 후각을 통해 환기되는 기억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무형의 감각과 서사에 주목했고, 이후 사우나 등 일상적 공간으로 관심을 확장해 물과 증기, 타일, 거울 등 환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몸과 맺는 관계와 그 안에서 생성되는 신체화된 경험을 작업해왔다.
선리 작가. (사진=워크스워크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