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앞두고 조국에 안긴 안중근 의사 유묵…통한의 ‘만국공법불여대포’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13일, 오후 01:11

[이데일리 유준하 기자] “만국공법(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사진=연합뉴스)
안중근 의사 '만국공법불여대포' 유묵.(사진=연합뉴스)
2m에 가까운 종이 위에 큼직하게 쓰여진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 죽음을 앞두고도 강건했던 필체에는 독립투사의 비분강개(悲憤慷慨·슬프고 분하여 마음이 북받치는 상태)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1910년 3월26일 사형을 한 달여 앞둔 안중근(1879∼1910) 의사의 글이 일반에 공개됐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것을 두고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정당한 전쟁 행위를 수행한 만큼 국제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지만, 일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광복절 앞두고 조국 품에 안긴 안중근 의사 유묵

13일 국가유산청은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중구에 위치한 덕수궁 중명전에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일본에서 환수한 안중근 의사 유묵(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인 ‘만국공법불여대포’를 공개했다.

‘만국공법불여대포’는 만국공법(萬國公法), 즉 국제법이 대포(大砲)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만국공법은 중국에서 번역, 출간돼 조선 말기에 유입된 국제법 서적의 제목으로 근대 국제법을 의미한다. 이 유묵은 1910년 2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안중근 의사가 느낀 국제법의 무력함에 대한 깊은 회의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오늘날의 국제정세를 관통하는 해당 표현은 당시 제국주의 열강이 국제법을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힘의 논리에 따라 국제 질서가 운영되던 당시 현실을 비판한 글이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안 의사는 만국공법에 따른 동양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주장한 바 있다.

작품 왼쪽 하단에는 안중근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도장(장인·掌印)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위에는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庚戌三月 於旅順獄中 大韓國人 安重根 書)‘, 우리 말로 ’경술년(1910년) 3월에 뤼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라는 문구가 기재돼 있어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인 1910년 3월 26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남긴 유묵임을 엿볼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후에도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정당한 전쟁 행위를 수행한 것이라 주장하며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안중근 의사를 단순 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을 구형했다. ’만국공법불여대포‘ 여덟 글자에는 이같은 부당한 현실에 대한 인식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사진=연합뉴스)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설치된 안중근 의사 동상(사진=연합뉴스)
◇“유묵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 보물 지정 가능성 높아”

’만국공법불여대포‘에서 보여지는 안중근 의사의 서체는 행서(글씨 획을 약간 흘려 쓰는 한자 글씨체)를 기본으로 하면서 초서(필획을 흘려 쓴 서체)를 혼용한 형태다. 글씨를 단숨에 쭉 써 내려간 여덟 글자는 안 의사 특유의 힘 있는 필체가 돋보인다.

특히 본문의 ’萬(만)‘자를 초서로 표기한 점은 안중근 의사만의 독자적인 글씨 쓰는 방식으로 해석된다. 또한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안 의사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 볼 때 필획의 처리방식, 자형 구성, 운필의 속도감 등 서풍 전반에서 높은 유사성을 보이고 있고, 손도장도 일치해 전문가들로부터 진본으로 평가받았다.

앞서 보물로 지정된 안중근 의사의 유묵은 앞서 1972년 당시 19개 작품이 일괄 지정된 이후 2022년 5개 작품 지정까지 총 31점이다. 이날 공개된 작품은 아직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유묵 중에서도 빼어난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 소장은 “사형 집행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3월에 쓰인 작품들은 대개 2월에 쓰인 것과는 또 다르다”면서 “현재까지 나온 것들을 보면 3월에 쓰인 유묵들의 수준이 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뒷면의 묵서(먹물로 쓴 글씨)를 통해 최초 소장자와 전승 경로가 구체적으로 확인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묵서에는 1910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경과와 최초 소장자인 뤼순감옥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의 이름, 본 유묵을 표구 및 보존한 이유, 유묵을 표구한 소장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날 공개회에 참석한 장지훈 경기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강건한 필획과 글자 마디의 긴밀함이 특징인 작품”이라면서 “안중근 의사 글씨는 용맹하고 기세등등하며 필력이 웅장한 게 특징인데 이번 작품은 그 중에서도 매우 빼어나 보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했다.

작품 뒷면의 묵서(사진=연합뉴스)
작품 뒷면의 묵서(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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