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문화 풍자한 '선인장' 안무가 에크만 "정답 찾지 않아도 돼"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13일, 오후 03:49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관객은 시험을 치르듯 정답을 찾아내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할 수 있어요.”

알렉산더 에크만(사진=서울시발레단)
알렉산더 에크만(사진=서울시발레단)
세계적인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이 최근 이데일리와 서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 ‘선인장’(Cacti)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작품은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리는 서울시발레단 창단 2주년 기념 더블빌 ‘죽음과 소녀’ 무대에 오른다.

2010년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 2(NDT2)에서 초연된 ‘선인장’은 예술과 비평 문화를 풍자한 작품이다.

에크만은 “‘선인장’의 중심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을 둘러싼 환경은 엄청난 속도로 변했다”며 “2010년 당시엔 소수의 평론가에게 작품을 평가하고 그 의미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고, 그런 시스템에 상당히 상처받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선인장’은 그런 취약함에서, 동시에 예술을 둘러싼 시스템 전체를 웃어넘기고 싶은 마음에서 탄생했다”며 “오늘날 그 권력은 사라진 게 아니라 분산됐으며 누구나 즉각 반응을 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작품을 온전히 경험할 시간은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상징인 선인장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에크만은 “시각적으로 강렬하고 엉뚱하면서도 살아 있는 느낌을 가진 선인장은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고 의외로 연약해 우리 인간의 모습과 닮았다”며 “무대에 선인장이 등장하는 순간 사람들은 해석을 시작한다. 야망이 될 수도, 경쟁이나 고립을 의미할 수도 있는데 이런 반응이 잘못된 게 아니라 오히려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관객을 바보로 만들려는 함정이 아니라 거울에 가깝다”며 “스스로 공식적인 의미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작품의 안무적 핵심에 대해서는 ‘집단적 집중력’이라고 답했다. 에크만은 “16명의 무용수가 각자의 플랫폼 위에 서 있지만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며 “저는 인간이 극도의 집중 상태에 이르렀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늘 매료돼왔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이 말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목소리는 관객과의 관계를 즉각적으로 변화시킨다. 언어는 움직임처럼 안무할 수 있는 것”이라며 “말로 이루어진 대화는 몸이 겉으로 표현하는 것과 실제 생각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는데, 저는 그 마찰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발레단 '선인장' 콘셉트 사진 (사진=서울시발레단)
서울시발레단 '선인장' 콘셉트 사진 (사진=서울시발레단)
이번 공연에서 서울시발레단 무용수들에게 기대하는 바도 밝혔다. 에크만은 “‘선인장’은 겉으론 장난스럽지만 실제로는 매우 고난도의 작품이고 무용수에게는 리듬감과 정확성, 체력, 완벽한 집중력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무용수들이 웃기려고 해서는 안 된다. 유머는 철저한 진지함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무용수들이 마치 20년 동안 이 작품을 연습해온 것처럼, 이번 공연이 자신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처럼 무대에 서기를 바란다”며 “새로운 발레단이 작품을 레퍼토리로 가져갈 때는 정확한 타이밍과 리듬적 관계, 집중력 같은 구조는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것처럼 똑같이 재현되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한국 관객에 대한 기대도 보였다. 에크만은 “한국 관객은 놀라울 만큼 집중해서 공연을 관람한다는 걸 경험했는데 공연 전후로 흐르는 아름다운 정적을 좋아한다”며 “서울의 관객들이 놀라움과 긴장, 공감과 웃음을 함께 나누고, 선인장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고 돌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더블 빌로 크리스티안 슈푹의 ‘일곱 번째 파랑’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의 음악이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연극적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며 “두 안무가가 같은 음악을 듣고 서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그 충돌 자체가 이 더블빌 공연이 지닌 예술적 가치”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발레단 더블빌 ‘죽음과 소녀’는 크리스티안 슈푹의 ‘일곱 번째 파랑’과 알렉산더 에크만의 ‘선인장’을 함께 선보이는 무대다. 오는 14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창단 2주년을 맞은 서울시발레단이 세종 M씨어터를 벗어나 처음으로 여는 정기공연으로, 강효정·이상은·임수정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이 시즌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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