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진노'의 한 장면.(사진=극단 그린피그)
주네의 텍스트를 재현이 아닌 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사람의 언어 그대로 ‘낭독’으로 옮기는 것, 학살의 현장을 배우가 구체적 인과(因果)로 연기하지 않는 것. 이는 참상을 직접 재현하지 않으려는 윤리적 선택인 동시에, 제의의 형식을 빌려 참상을 대하는 태도를 내세우는 일이다. 접신한 무당이 서로 다른 세계와 인간의 경계를 넘나들듯 낭독자는 잠시 주네가 되고, 관객은 잠시 1982년 샤틸라의 목격자가 된다. 관객은 무표정하게 반복되는 배우들의 행위, 넘어짐과 일어남, 쓰러짐과 스러짐에 의미를 생성한다.
연극 '진노'의 한 장면.(사진=극단 그린피그)
연극 '진노'의 한 장면.(사진=극단 그린피그)
공연은 책 도입부인 “사진은 2차원이고 텔레비전 화면도 마찬가지다. 그 어느 곳으로도 직접 들어갈 수 없다”는 텍스트를 따라간다. 파편화된 사람 형상과 일상의 조각, 반복되는 행위와 건조한 낭독 사이로 지금 여기의 외침과 주장, 증언들이 솟구쳤다 내려앉는다. 무대에 널린 생명과 일상의 파편은 언어를 앞지르는 오브제가 된다. 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학살의 참상뿐 아니라, 그 앞에서 눈을 가리고 애써 고개를 돌린 외면의 정황까지 감각하게 한다. 무대와 객석은 정의를 쟁취하려는 연대의 공간이라기보다, 외면이라는 미필적 고의를 씻어내고 그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의의 공간이 된다.
관객을 향해 소리 높여 주장하기보다 스스로 그 형식과 행위에 공명하도록 정교하게 연출한 무대다. 특히 이 모든 제의적 구성을 감싸며 나지막한 합송처럼 퍼지는 그레고리안 성가 ‘디에스 이레’가 인상적이다. ‘진노의 날’을 뜻하는 이 성가는 단조 느낌으로 하강하는 4음이 반복되며 강렬하고 불길한 기운을 만든다. 심판의 날에 대한 공포에 앞서 자비를 구하는 탄원은 이 공연에서 죽은 자들뿐 아니라 그들에게 공명하는 산 자들까지 감싸 안으며 제의적 의미를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