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눈엔 내 행복이 안 보여?”…‘현실판 빌리 엘리어트’ 전민철의 발레인생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18일, 오후 10:52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아빠 눈에는 내 행복한 모습은 안 보여?”

소년의 눈에 금세 눈물이 맺혔다. 남자가 무용으로 성공하기는 쉽지 않다며 발레를 그만두라는 아버지 앞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공부도 잘하니까 무용은 그냥 취미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설득에 소년은 “그냥 무용하는 게 좋다고!”라며 끝내 고개를 떨궜다.

발레리노 전민철(사진=ⓒBAKi, 전민철 인스타그램)
발레리노 전민철(사진=ⓒBAKi, 전민철 인스타그램)
이야기의 주인공은 2017년 SBS ‘영재발굴단’에 출연했던 발레리노 전민철(22)이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는 누구보다 발레를 좋아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고집은 결국 세계를 향했다. 9년이 지난 지금, 이불 속에서 서럽게 울던 소년은 세계적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퍼스트 솔리스트’가 됐다. 지난해 입단과 동시에 주역을 맡을 수 있는 자리에 오른 이례적인 경우다. ‘발레계 아이돌’로 불리는 그는 오는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그의 성장기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영화 ‘빌리 엘리어트’ 속 주인공의 삶과 꼭 닮았다. 영국 탄광촌에서 자란 소년 빌리가 아버지의 반대를 딛고 발레리노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로, 동명의 뮤지컬로도 제작돼 여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발레를 반대하는 아버지, 춤을 추는 순간 가장 행복한 아들, 그리고 자신의 재능과 열정으로 결국 아버지의 마음까지 돌려놓은 소년. 다른 점이 있다면 빌리는 스크린 속 주인공이고, 전민철은 그 이야기를 현실에서 써 내려갔다는 것이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의 알브레히트 왕자로 출연한 전민철(사진=유니버설발레단).
유니버설 발레단의 ‘지젤’의 알브레히트 왕자로 출연한 전민철(사진=유니버설발레단).
영화 속 빌리도 처음부터 가족의 응원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탄광촌에서 아버지, 형과 함께 살아가던 빌리는 복싱을 배우러 갔다가 우연히 발레를 접한다. 춤에 마음을 빼앗긴 빌리와 달리 광부인 아버지는 아들이 발레를 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빌리는 춤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아들의 재능과 행복을 알아본 아버지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전민철에게도 발레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걱정한 것은 아들의 미래였지만, 어린 전민철이 꿈꾸는 미래에는 언제나 발레가 있었다. 마린스키 발레단은 2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러시아 발레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바슬라프 니진스키, 루돌프 누레예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등 발레사에 이름을 남긴 전설적인 무용수들이 거쳐 갔다. 전민철은 이곳에서 군무부터 시작하는 일반적인 입단 과정과 달리, 처음부터 주역을 맡을 수 있는 퍼스트 솔리스트로 합류하며 화제를 모았다.

‘빌리 엘리어트’의 백미는 성인이 된 빌리가 백조 의상을 입고 힘차게 무대 위로 뛰어오르는 장면이다. 가족의 반대를 딛고 탄광촌을 떠난 소년이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멋지게 날아오르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전민철이 국내 팬들을 만나는 작품 역시 고전발레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다. 아버지의 반대를 딛고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간 빌리처럼, 자신의 꿈을 좇아온 전민철의 진짜 비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

유니버설발레단 공동기획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 역을 맡은 전민철(사진=뉴시스).
유니버설발레단 공동기획 '백조의 호수'에서 지그프리트 왕자 역을 맡은 전민철(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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