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 도난사건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8월 21일, 오전 06:00

모나리자. (출처: 레오나르도 다 빈치,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11년 8월 21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세계 미술사상 가장 충격적인 이 도난 사건은 하나의 예술품이 전 세계적 신화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범인은 박물관에서 유리 보호벽 설치 작업을 맡았던 이탈리아 출신 판유리공 빈센초 페루자였다. 그는 일요일 밤 청소도구 벽장에 숨어든 뒤,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 아침을 틈타 벽면에서 그림을 떼어냈다. 계단 통로에서 액자와 유리 덮개를 해체한 그는 목판 원화를 작업용 덧가운 속에 숨겨 유유히 건물을 빠져나갔다.

도난 사실은 화요일 오전에야 뒤늦게 확인됐다. 프랑스 정부는 국경을 봉쇄하고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으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와 화가 파블로 피카소를 엉뚱하게 용의선상에 올리는 등 허둥댔다. 수사는 2년 넘게 뚜렷한 진척 없이 제자리를 맴돌았다.

범행의 실마리는 1913년 12월 뜻밖의 장소에서 풀렸다. 페루자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한 미술상에게 접촉해 '나폴레옹이 약탈한 조국의 문화재를 반환하겠다'며 거액을 요구했다가 그의 신고로 2년 4개월 만에 전격 체포됐다. 그러나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프랑스로 이주하며 국왕 프랑수아 1세에게 정당하게 매각한 작품이었다. 페루자의 애국심 주장은 궤변에 불과했다.

이 사건으로 모나리자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수사 기간 내내 전 세계 언론이 쏟아낸 수많은 가설과 보도는 작품에 신비로운 서사를 입혔다. 텅 빈 루브르의 벽면을 보기 위해 수많은 군중이 몰려드는 진풍경도 낳았다. 1914년 루브르로 돌아온 모나리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예술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루브르의 보안이 허망하게 뚫렸던 이 황당한 사건은 근대 박물관의 체계적인 보안 시스템 구축과 문화재 관리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촉발했다. 역설적이게도 파리의 벽면에서 사라졌던 2년여의 공백은 모나리자를 영원히 잊히지 않을 불멸의 전설로 굳혀놓았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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