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월리스의 재판 장면 (출처: 대니얼 매클리스,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305년 8월 23일, 런던 스미스필드 광장에서 한 사내의 육신이 갈기갈기 찢겼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쟁을 이끈 불멸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손에 처참하게 처형된 날이다.
13세기 말 잉글랜드는 왕위 계승 분쟁에 휘말린 스코틀랜드를 무력으로 짓밟았다. 침탈과 압제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이가 바로 하급 귀족 출신의 월리스였다. 그는 민중을 규합해 저항군을 조직했고,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수적 열세를 딛고 잉글랜드 정규군을 궤멸시키는 기적을 썼다. 이 승리로 그는 스코틀랜드의 수호관으로 추대됐다.
그러나 영광은 길지 않았다. 이듬해 폴커크 전투에서 에드워드 1세의 철기병과 장궁병에 패배한 그는 수호관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을 돌며 외교적 지원을 호소하고 게릴라전을 이어갔으나, 1305년 8월 스코틀랜드 귀족 존 드 멘티스의 배신으로 잉글랜드군에 체포됐다.
잉글랜드 왕실은 그에 대해 가장 끔찍한 처형 방식인 대역죄인 교수·내장적출·능지처참형을 집행했다. 말에 묶여 거리를 끌려간 뒤 목이 매달렸고, 숨이 끊어지기 직전 내장이 꺼내져 불태워졌다. 그의 머리는 런던 브리지에 효수됐으며, 사지는 네 갈래로 나뉘어 뉴캐슬, 버릭, 스털링, 퍼스로 보내졌다.
에드워드 1세는 월리스를 죽여 스코틀랜드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으려 했다. 하지만 잔혹한 탄압은 거대한 역풍을 불렀다. 공포 대신 타오른 분노는 분열되어 있던 스코틀랜드인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월리스의 피는 로버트 브루스를 비롯한 후대 지도자들에게 꺼지지 않는 독립의 불씨를 지폈고, 마침내 배넉번 전투의 승리를 거쳐 독립 쟁취로 이어졌다.
1995년 개봉된 멜 깁슨 주연의 영화 '브레이브 하트'는 월리스를 모델로 한 영화다. 압제를 거부한 그의 삶은 7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불의에 맞서는 인간 존엄의 숭고한 이정표로 남아 있다. 스코틀랜드의 푸른 언덕 위에 그의 전설이 영원히 메아리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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