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창극 '살로메'에서 살로메 역의 소리꾼 김준수(왼쪽)와 헤로디아 왕비 역의 서의철(오른쪽)이 연기하고 있다. (사진=마포문화재단)
‘젠더프리 캐스팅’은 배역을 정할 때 배우의 성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방식을 뜻한다. ‘젠더프리 캐스팅’은 연극에서 뮤지컬로 계속 확장하며 공연계 전반의 익숙한 문법이 됐다.
올해에도 ‘젠더프리 캐스팅’을 내세운 작품들이 잇따라 무대에 오르고 있다. 장진 연출의 연극 ‘꽃의 비밀’(9월 12일~11월 29일, 서울 종로구 링크아트센터 벅스홀)은 이번 시즌 남자 배우들이 ‘남장 여자’를 연기하는 색다른 시도를 선보인다. 기존 젠더프리 캐스팅이 여성 배우가 남성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정웅인과 성지루가 남편인 척 변장하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새로운 웃음 코드를 만들어낸다. 이탈리아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사라진 남편들의 보험금을 받기 위해 하루 동안 남장을 해야 하는 네 주부의 소동극이라는 원작 설정 자체가, 남성 배우의 남장 연기라는 이중적 장치와 만나 새로운 재미를 낳는 셈이다.
장진 연출은 “작품을 쓸 당시부터 남자 배우들이 여장한 채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계획했는데, 이번에 용기를 내봤다”며 “남자 배우가 여장을 하고 남장 여자를 연기한다면, 관객은 완벽한 ‘남자’가 돼 있는 배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무대적 환영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재연으로 돌아오는 뮤지컬 ‘아나키스트’(9월 15일~12월 6일, 서울 종로구 예스24아트원 1관)도 젠더프리 캐스팅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제강점기 베이징과 상하이를 배경으로 혁명단을 결성한 세 청년의 우정과 신념을 그린 이 작품은 기존 남성 배역이었던 ‘덕형’, ‘자경’, ‘무혁’을 여성 배우들이 새롭게 연기한다. 작품은 지난해 초연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번 시즌에선 캐스팅 확장을 통해 인물 간 관계와 감정선에 새로운 결을 더한다는 설명이다.
앞서 연극 ‘오펀스’도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중년 갱스터와 고아 형제의 교감을 그린 이 작품은 배역마다 4명씩 캐스팅해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12명의 배우가 참여했다. 김태형 연출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남녀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고 언급했다. 배우 문근영의 9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도 주목받았다. 문근영은 2017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처음 오른 무대에서 남성 배역인 ‘트릿’ 역을 선택했다.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NOL 서경스퀘어에서 열린 연극 '꽃의 비밀' 기자간담회에서 장진(왼쪽) 감독과 정경순, 성지루 등 출연배우들이 포토타임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젠더프리 캐스팅’을 내세운 대표 작품으로는 연극 ‘아마데우스’·‘보도지침’·‘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뮤지컬 ‘광화문 연가’·‘해적’ 등이 꼽힌다. 처음엔 단발성 실험에서 출발했지만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가속화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는 “미투 운동 이전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 헌신적인 어머니처럼 정형화된 구도가 흔했다”면서 “미투를 기점으로 그런 구도가 과감하게 깨지기 시작했다”고 해석했다.
초기 젠더프리가 남성 중심 무대에 대한 반발로 여성 배우의 기회를 넓히려는 성격이 강했다면, 지금은 배역의 본질을 탐구하며 남녀가 서로의 역할을 교차 연기하는 쌍방향적 방식도 보이고 있다.
특히 코미디부터 서사극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자연스러운 연출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사회적 성평등 인식의 확산, 여성 작가의 증가, 스타 마케팅 전략이 맞물리며 만들어낸 흐름이라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희곡을 읽어보면 요즘은 남자와 여자를 뚜렷하게 구분 짓지 않고 관객들도 특정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 없이 극을 받아들이는 분위기”라며 “여러 배우가 한 배역을 나눠 맡는 멀티 캐스팅 구조는 관객이 조합을 바꿔가며 같은 작품을 다시 찾는 ‘회전문 관객’을 만들어내며 흥행 전략으로도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뮤지컬 '해적' 공연 장면 (사진=콘텐츠플래닝)
다만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생물학적 성별에 대한 편견을 허무는 것에 가까워 퀴어 등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한 ‘젠더’보다는, ‘섹스프리’로 봐야 한다”면서 “사회가 더 성숙해지면 지금의 섹스프리 흐름이 진짜 ‘젠더프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