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전기주식회사, '안국동선' 전차 개통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8월 25일, 오전 06:00

1945년, 경성의 전차를 이용하는 시민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1923년 8월 25일, 일제강점기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종로네거리에서 안국동을 잇는 전차 노선, 이른바 '안국동선'의 전차 운전을 본격 개시했다. 1899년 서대문과 청량리를 잇는 전차가 처음 등장한 이래, 식민지 수도의 혈관처럼 뻗어가던 전차 궤도가 마침내 조선 전통의 중심지 북촌의 관문까지 파고든 순간이었다.

안국동선은 종로2가와 안국동 네거리를 연결하며 북촌 일대의 교통 지형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 조선 왕조의 권력 핵심부였던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에 놓인 이 길은 본래 양반 사대부들의 거주 공간이자 한양의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전차 선로가 부설되면서 고요하던 전통 한옥 밀집 지역은 근대 도시의 빠른 호흡 속으로 급속히 편입되기 시작했다.

경성전기 측은 도심 교통 분산과 승객 수송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노선 확장의 이면에는 식민지 도시 구조를 일본식으로 재편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당시 일본인 거주지인 남촌 중심의 상업 축과 조선인들이 밀집한 북촌을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장악하기 위한 물리적 교통망의 확충이었다.

전차 개통은 경성 시민들의 일상에도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가마와 인력거, 소달구지가 오가던 흙길은 궤도가 박힌 신작로로 변모했고, 이동 시간의 단축은 일상의 속도를 재촉했다. 반면 좁아진 길목과 궤도 설치로 인해 보행자 안전사고가 빈번해지는 등 근대화의 부작용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안국동선 전차 운행 개시는 북촌 일대가 전통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물리적 분기점이었다. 전차가 실어 나른 것은 단순한 승객과 물류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통 질서의 붕괴이자 식민지 자본주의의 확장이었고, 거스를 수 없이 밀려드는 서구식 도시화의 거대한 흐름이었다.

안국동선 궤도는 훗날 자동차 중심의 도로 확장 정책에 밀려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현재 서울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도심 도로망으로 이어져 있다. 안국동선 전차는 식민지배의 그늘과 근대 도시 문명의 충돌이라는 이중적 역사를 품은 채, 서울이 통과해 온 굴곡진 근대의 경로를 또렷이 증언하고 있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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