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 스님 영결식, 큰 슬픔에 잠긴 불교계…"시대의 위대한 정신"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8월 25일, 오전 11:12

명진 스님의 영결식이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렸다.

봉은사 전 주지 명진 스님의 영결식이 25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열렸다. 영결식에는 곧 있을 제38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한 진우 스님과 경우 스님을 포함, 전국의 교구본사에서 모인 스님 및 개신교, 천주교 종교인과 시민들 약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영결식은 명종 5타로 시작했다. 이후 개식, 삼귀의례, 영결법요, 행장 소개, 추도입정이 이어졌고 영결사와 추도사, 추도시, 조가, 문도인사, 헌화, 사홍서원, 발인으로 마쳤다.

장의위원장 도공 스님과 염무웅 전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은 영결사를, 영진 스님과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추도사를 각각 맡았다. 추도시는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조가는 장사익과 봉은사합창단이 맡았다.

명진 스님의 법구는 영결식 이후 충북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로 옮긴다. 고인의 출가 본사인 법주사에서는 이날 오후 3시께 다비식을 치른다.

명진 스님은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시 하예동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물에 떠 있는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 판정을 받았다. 법구에 특별한 외상이나 범죄 혐의점이 없어 부검은 하지 않기로 했다.

"명진스님, 말에 거침이 없고 행동에 물러섬이 없었다"
이날 일감 스님은 영결식 사회를 봤다. 행장 소개는 원타 스님이, 문도 인사는 선용 스님이 각각 맡았다. 추도시는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낭독했다. 장사익과 봉은사합창단은 조가를 불러 고인을 기렸다.

영결사는 탄성문도 문장인 장의위원장 도공 스님과 염무웅 전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이 했다. 백담사 기본선원 조실 영진 스님과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추도사를 낭독했다.

도공 스님은 "말에 거침이 없고 행동에 물러섬이 없었던 스님은 평소에 닦은 수행의 힘으로 사물과 상황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항상 활발하게 살아 있는 수좌 선객"이라며 "사회운동도 종단개혁도 수행의 방편이자 수행임을 스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체득하셨다"고 말했다.

염무웅 전 관장은 "이 시대의 한 위대한 정신과 헤어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며 "용산참사, 세월호 등 민주주의를 짓밟는 반민중 정권들 시대에 그의 외침 없이 어떻게 견뎠을까 싶은 이름, 바로 명진 스님"이라고 말했다.

영진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을 위한 승려대회에서 가사틀 벗어 부처님 전에 바치며 종단개혁을 위해 펼친 사자후는 종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며 "봉은사 주지를 맡아 당시 정권의 잘못을 꾸짖고 사회의 약자들을 더욱 포근히 품어 안으면서도 기도 정진을 멈추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동체대비를 몸으로 실천한 수행승, 명진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는 "동체대비를 몸으로 실천한 수행승이셨고, 억강부약의 참된 기수이셨던 스님"이라며 "이제 법주사의 다비 불길 속에서 육신은 재가 되어 흩어지겠지만 당신께서 남기신 크나큰 정신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앞으로도 우리의 길을 비춰줄 것"이라고 했다.

명진 스님은 세수 76세, 법랍 52년으로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 입산했고, 베트남전 참전 뒤 1974년 법주사에서 탄성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받았다.

1987년 불교계 대표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1994년 대한불교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다. 중앙종회 의원과 부의장,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상임집행위원장 등을 지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로 재임하며 사찰 재정을 공개했다. 1000일 동안 하루 세 차례 1000배를 올리는 수행도 이어갔다.

봉은사 직영 사찰 전환을 둘러싸고 조계종 총무원과 대립한 뒤에도 종단 운영을 비판했다. 2017년 제적 징계 무효 소송 1·2심에서 승소해 올해 초 승적을 회복했고, 용산참사와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비롯한 사회 현장과도 연대했다.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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