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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후의 질서'는 관세·보조금·수출 통제가 일상이 된 무역 질서를 짚고 공급망 취약성을 진단한다. 수마야 케인스와 채드 P. 바운은 과거 자유무역 체제로의 복귀 기대보다 비용과 취약점을 계산하는 대응을 강조한다.
관세 인상 한마디가 시장을 흔들고 희토류 통제가 생산 현장을 멈춰 세우는 상황에서 무역은 더 이상 규칙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트럼프 이후의 질서'는 규범 기반 자유무역 체제가 약해진 뒤 각국이 관세와 수출 통제, 보조금을 어떻게 무기로 쓰는지 살핀다.
책은 도널드 트럼프를 무역전쟁의 단일 원인보다 변화한 질서의 '증상'으로 본다. 미국이 다시 자유무역의 보증인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보다, 보호무역이 지속되는 조건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구성은 무역전쟁에서 걸린 비용과 평화의 문제를 짚은 뒤 정부·기업·대중의 서로 다른 셈법을 따라간다. 이어 규칙 붕괴의 원인, 취약점 진단과 비축 같은 방어책, 수입 장벽과 수출 통제의 대응 방식으로 논의를 넓힌다.
규범 붕괴 뒤 각자도생의 셈법
저자는 각국 정부의 행동을 제한하던 규범 기반 체제가 이미 크게 흔들렸다고 진단했다. 과거의 질서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무역전쟁을 예외적 사건이 아닌 새로운 환경으로 다룬다.
무역 개방은 번영의 조건인 동시에 취약성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는 상대국이 공급 중단이나 시장 폐쇄를 압박 수단으로 쓸 때 더 큰 위험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책은 무역 개방이 일부 국가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산업에 묶어 둘 가능성도 짚는다. 아시아 국가들의 제조업 장악 이후 다른 나라들이 발전 단계로 올라갈 사다리를 잃을 수 있다는 '조기 탈산업화' 우려도 함께 다룬다.
관세는 경제적 손익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무역 개방으로 피해를 본 유권자에게 관세가 정치인이 자신을 위해 싸운다는 신호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무역전쟁은 여론전의 성격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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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망에서 찾는 취약점과 방어
취약성은 한 나라가 얼마나 중요한 물건을 팔 수 있는지뿐 아니라 상대국이 대체 공급처를 얼마나 빨리 찾을 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시장을 무기화해 온 상대인지도 함께 따져야 할 변수로 제시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에도 미국이 핵발전소용 러시아산 우라늄을 계속 수입한 사례는 대체 공급처의 부재를 보여준다. 중국이 호주의 석탄·와인·랍스터 수입을 막았지만 철광석은 건드리지 못한 사례도 공급망 의존의 역학으로 묶는다.
중국의 소비 규모도 수요와 공급 불균형을 읽는 단서로 제시한다. 2024년 중국인의 평균 소비액은 미국인의 약 10% 수준이었고, 두 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 격차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중국 소비가 낮았다는 분석이다.
4부는 취약점 진단, 보조금, 비축을 방어 전략의 축으로 다룬다. 5부에서는 수입 장벽의 부작용을 경계하면서 수출 통제에 대응하는 방식을 살피며, 장벽을 높이는 일이 곧바로 해법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짚는다.
한국 독자에게 남는 무역전쟁의 질문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이나 자유무역의 보증인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책 전반을 관통한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도 새로운 무역협정이나 규범 기반 분쟁 해결 체제 복원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대목이 그 근거다.
한국어판에는 두 저자의 특별 서문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안덕근 교수의 추천의 글을 실었다. 미·중 경쟁 속 중견국인 한국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지, 한국의 대응 사례를 어떻게 볼지 다룬다.
수마야 케인스는 '파이낸셜 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영국 재무부와 재정연구소를 거쳤다. 채드 P. 바운은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전 미국 국무부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국제 통상 정책을 연구해왔다.
두 저자는 각국 정책 결정자와 다국적 기업 임원, 통상 협상 실무자 등 100명 넘는 취재원을 만났다. 정부와 기업, 대중이 같은 무역 갈등을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바라보는 이유를 이들의 경험과 함께 풀어낸다.
△ '트럼프 이후의 질서'/ 수마야 케인스·채드 P. 바운 지음/ 이민희 옮김/ 3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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