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참회와 회한은 작품 전체를 흐르는 자기 성찰의 출발점이다.
'내가 고요해질 때'는 자연과 사람을 향한 박남준 시인의 시편과 그림을 엮어 비움과 스밈의 감각을 담는다. 박남준은 지리산 자락과 일상에서 포착한 장면을 따라 지난 시간과 늙음을 돌아본다.
지난날의 참회와 회한은 작품 전체를 흐르는 자기 성찰의 출발점이다. 일인칭 '나'의 고백은 늙음을 피하거나 감추기보다 지금의 자신에 이르는 시간으로 되짚으며, 물질과 정신의 욕망을 비워낸 삶의 태도를 따라간다.
시편 사이에는 시인이 직접 그린 그림이 놓인다. 한지 위에 먹향과 차분한 색을 입힌 그림은 시와 분리된 삽화가 아니라, 자연의 풍경과 마음의 움직임을 함께 옮기는 또 하나의 문장으로 배치된다.
표제작 '내가 고요해질 때'에서는 흔들리던 시간이 잠잠해진 뒤 나무를 그리고 길을 따라오던 별을 내거는 장면이 이어진다. 시인은 동화적 상상력과 시화의 형식을 빌려 자신만의 서체와 그림으로 고요에 이르는 감각을 형상화한다.
일상의 사물도 시의 중심에 놓인다. '소중한 대접'은 찻잎과 산국 향기, 김치와 토마토 장아찌를 올린 밥상으로 소박한 한 끼를 그린다. '양말별'은 구멍 난 양말을 버리기 전 그간의 노정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삶의 흔적을 비춘다.
사람을 향한 기록도 한 축을 이룬다. '구례 택시 이병운'은 구례구역에서 악양 집까지 이어지는 길과 택시기사 이병운의 이야기를 담는다. 여러 스승과 벗, 세상의 풍파를 견딘 이들의 삶을 시인은 자연의 풍경과 나란히 놓는다.
시집은 1부부터 3부까지 '별빛 편지', '사랑', '꽃잠 소원' 등으로 묶였다. '매화나무 부고장을 태우지 않았더니', '콧등치기 느름국', '무위당의 집'처럼 제목부터 구체적인 사물과 인물, 기억을 드러내는 시편들이 각 부에 실렸다.
박남준은 시 인생 40년을 넘긴 뒤에도 지리산 자락에서 자연과 벗들을 사귀며 살아왔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젊은 날 북·장구·징·꽹과리에 빠졌던 기억과 그림시집을 내게 된 마음을 적고, 전주와 지리산 자락 악양 동매마을을 오가며 이 시집을 완성한 과정을 남겼다.
이 책은 거창한 사건보다 차향, 나무, 낡은 양말, 한 끼 밥상과 길 위의 사람에게 시선을 둔다.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고 삶의 무게를 덜어내려는 시편과 그림은, 일상 속에서 무엇을 오래 바라볼지 묻는다.
△ 내가 고요해질 때/ 박남준 지음/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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