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부모 살인사건…건축가 백희성의 두 번째 장편소설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8월 26일, 오전 07:01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카미에게 타인은 옷의 질감과 걸음걸이, 손때가 묻은 자리로 남는다.

'기억의 무늬'는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카미가 손끝에 남은 감각을 따라 19년 전 부모 살인 사건의 실체를 파고든다. 백희성은 옷과 가구의 질감, 닳은 흔적을 단서로 삼아 미제 사건과 잃어버린 사랑의 서사를 엮었다.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카미에게 타인은 옷의 질감과 걸음걸이, 손때가 묻은 자리로 남는다. 얼굴 대신 사물에 축적된 흔적으로 사람을 기억하는 그의 감각은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기도 하다. 세 살 무렵 부모가 죽던 날의 기억도 손끝에 남은 옷감의 느낌에서 시작한다. 얼굴을 식별하지 못하는 19년의 시간은 그에게 사물을 더 세밀하게 읽게 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무대는 프랑스 파리의 패션학교다. 의상 디자인을 배우는 22살 카미는 안면인식장애를 타인에게 알리지 않은 채 생활한다. 그가 옷을 공부하게 된 데에는 부모의 죽음 이후 이어진 집념이 있다. 사건 현장에서 부모와 함께 봤던 세 번째 실루엣의 감촉을 되찾으려는 마음이다. 공간과 물건이 사랑과 비밀을 품을 수 있다는 질문은 옷과 가구의 촉감을 따라가는 서사의 출발점이 된다.

카미는 매주 화요일 프레드릭을 만나 사건 파일을 들여다본다. 부모가 피해자인 미제 살인 사건의 기록에는 그날 현장에 있던 제3의 존재가 남지 않았다. 하지만 카미는 그 실루엣에서 전해진 옷의 촉감을 잊지 않는다. 기록의 빈자리와 감각의 기억이 19년 동안 멈춘 수사를 다시 움직인다. 손으로 만진 감각을 증거처럼 붙드는 인물의 시선이 일반적인 범죄 추적과 다른 긴장을 만든다.

성인이 된 카미는 사건 수사 재개를 요청하고, 현장에 있던 오래된 아기 침대를 단서로 살핀다. 그의 장애와 부모의 사건을 모두 아는 친구 뤼미에르는 수사에 힘을 보탠다. 둘은 평범한 재료로 지은 집 안에서 유난히 고급 목재와 낯선 문양을 지닌 침대를 발견한다. 침대 양식 자체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나무에 새긴 문양은 수백 년 전의 것처럼 보인다. 가구에 새겨진 오래된 흔적은 사건 당일의 감각과 연결된다.

소설은 천과 나무의 결을 사건을 읽는 언어로 바꾼다. 카미는 두 종류의 직물을 더듬어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리고, 박음질의 유무와 손상된 나무의 틈에서도 차이를 가려낸다. 셔츠 커프스의 닳음, 코트 밑단의 기울기, 가구의 흠집은 인물의 습관과 시간을 담은 표식이다. 얼굴과 몽타주가 비워진 자리에서 촉감과 체취, 마모의 흔적이 추리의 근거가 된다. 프롤로그 뒤 '기억의 조각'에서 '노엘의 마음'까지 이어지는 14개 장은 추적과 집, 직물, 가구의 비밀을 차례로 통과한다.

미제 사건을 좇는 긴장감은 카미가 잃어버린 감정과 사랑에 다가가는 흐름과 나란히 간다. 사물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상처와 관계를 저장한 증거로 등장한다. 옷에 남은 체취와 오래된 가구의 상처를 따라가며 카미는 범인만이 아니라 부모의 죽음에 가려졌던 진실을 마주한다. 바늘에 찔린 상처가 시간이 지나 새살로 남는다는 문장은 옷이 인간의 상처를 꿰매려는 본능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과거에 붙들린 인물이 가장 깊은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도 이 추적 안에 놓인다.

백희성은 프랑스 폴 메이몽 젊은건축가상을 받았고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 사무소에서 디렉터를 지낸 건축가다. 10만 부가 팔린 전작 '빛이 이끄는 곳으로' 이후 2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을 내놨다.

△ 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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