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호박' 日 현대미술 거장 쿠사마 야요이 별세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27일, 오전 12:17

[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일본을 대표하는 현대미술 거장 쿠사마 야요이가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97세.
쿠사마 야요이. (사진=AFP)
쿠사마 야요이. (사진=AFP)
일본 언론에 따르면 쿠사마 야요이 재단은 쿠사마가 지난 14일 도쿄의 한 병원에서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사망했다고 27일 밝혔다.

쿠사마재단은 “쿠사마는 예술 창작에 온전히 헌신한 특별한 삶을 통해 시각 예술과 행위 예술, 소설, 시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선구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로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며 “그녀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고 영원한 사랑과 영혼에 대한 탐구를 이어갔다”고 밝혔다.

쿠사마는 풍부한 색채의 물방울 무늬를 모티브로 한 거대한 호박 오브제 작품 등으로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겪은 환각에서 유래한 물방을 무늬는 쿠사마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로, 개인사의 고통을 예술적으로 승화해 명성을 얻었다.

1929년 일본 나가노현에서 태어난 쿠사마는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유했던 그의 가족은 화훼 농장을 운영했고, 쿠사마는 어머니가 말렸음에도 앉아서 꽃을 그리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쿠사마는 꽃들이 자신을 에워싸고 말을 거는 듯한 환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본 것을 그림으로 옮겼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3세였던 쿠사마는 일본군 낙하산에 쓰일 천을 생산하는 일에 동원됐다. 쿠사마는 이후 교토에서 일본 전통 회화 양식인 ‘니혼가’를 공부했지만 형식적 제약에 답답함을 느꼈다. 집안이 정해놓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미래를 거부한 쿠사마는 1958년 일본을 떠나 뉴욕으로 향했다.

쿠사마는 1973년 일본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물방울과 그물무늬를 활용한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본 귀국 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1990년대에는 그의 대표적 상징이 된 호박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6년 일본 문화훈장을 받았고, 2017년에는 도쿄 신주쿠에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열었다.

쿠사마는 조각가이자 화가인 동시에 행위예술가이기도 했다. 1968년에는 뉴욕 트라이베카에서 뉴욕 최초의 ‘동성애자 결혼식’을 열었고,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기 위해 유엔 본부 밖에서 소련 국기를 씻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는 나체의 공연자들에게 물방울 무늬를 칠한 ‘바디 페스티벌’을 열기도 했다. 한때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베트남전쟁을 끝내자며 공개 구애 편지를 쓴 적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쿠사마의 회고전은 전세계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그는 미술계의 평가가 자신의 위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쿠사마는 생전 “내가 죽은 뒤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웃사이더로 남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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