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봤는데?”…‘민음사빵’ 책갈피 속 숨은 그림 찾기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8월 31일, 오후 03:02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물에 빠져 죽어가는 ‘햄릿’의 오필리아가 웬 귀여운 강아지로 변했다. 물 위에 누운 오필리아 대신 튜브를 낀 강아지가 같은 풍경 속에 들어앉았다. 자세히 보니 편의점 빵에 딸려온 귀여운 책갈피가 170여 년 전 명화 ‘오필리아’를 재치 있게 흉내 내고 있다.

“어디서 봤는데?”…‘민음사빵’ 책갈피 속 숨은 그림 찾기


편의점에 세계문학전집을 빼닮은 빵이 등장하면서 때아닌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디자인을 그대로 입힌 빵을 구하려고 소비자들이 GS25 앱을 켜고 매장별 재고를 확인하는가 하면, 입고 시간에 맞춰 편의점을 찾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출판사와 편의점의 이색 협업이 예상 밖의 흥행을 불러일으키며 전국 편의점이 들썩이는 중이다.

GS25가 민음사와 손잡고 선보인 ‘민음사빵’은 지난 21일 출시 이후 27일까지 일주일 만에 4종 약 20만개가 팔렸다. 매장에 들어온 물량이 사실상 모두 팔리면서 입고 물량 대비 판매율은 100%에 육박했다. GS25 전체 빵류 매출 순위에서도 민음사빵 4종이 나란히 1~4위를 휩쓸었다.

빵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건 봉지 안에 무작위로 들어 있는 투명 책갈피다. 언뜻 보면 앙증맞은 캐릭터 그림이지만 하나씩 원본과 맞춰보면 ‘햄릿’부터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레 미제라블’까지 고전의 명장면을 찾아보는 ‘숨은 그림 찾기’가 시작된다.

가장 극적인 변신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지에는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1851~1852년 그린 명화 ‘오필리아’가 쓰였다. 연인 햄릿에게 아버지를 잃고 절망과 광기에 빠진 오필리아가 물에 빠져 죽음을 맞는 장면이다. 책갈피에서는 오필리아 대신 ‘복슬이’라는 이름의 강아지 캐릭터가 등장한다. 죽음을 앞둔 비극적인 장면이 순식간에 물 위를 한가롭게 떠다니는 듯한 귀여운 풍경으로 바뀐다.

“어디서 봤는데?”…‘민음사빵’ 책갈피 속 숨은 그림 찾기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도 원본과 나란히 놓고 보면 재미가 쏠쏠하다. 초록빛 숲과 벤치, 파란 옷을 입고 비스듬히 기대선 남성, 그 곁에 자리한 흰 드레스와 붉은 옷 차림의 여성까지 익숙한 배치는 그대로다. 그런데 세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모두 동글동글한 ‘부실감자’ 캐릭터로 바뀌어 있다. 19세기의 고풍스러운 풍경 한복판에 감자 캐릭터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잡으면서 원본과는 사뭇 다른 장면이 됐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도 귀여운 캐릭터를 만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황량한 들판과 거센 바람에 한쪽으로 휘어진 나무. 민음사판 표지만 봐도 소설의 무대인 ‘워더링 하이츠’(소설 속 저택 이름)를 휘감는 거칠고 쓸쓸한 분위기가 전해진다. 책갈피는 황량한 풍경은 그대로 두고, 그 한가운데에 캐릭터 ‘오둥이’를 세워놓았다.

“어디서 봤는데?”…‘민음사빵’ 책갈피 속 숨은 그림 찾기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는 세계적으로 낯익은 어린 코제트가 자리를 내줬다. 헝클어진 머리의 어린 소녀가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쓰는 모습은 오랫동안 ‘레 미제라블’을 상징해온 이미지다. 여관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학대받는 어린 코제트의 비참한 삶을 한 장면에 압축해 보여준다. 책갈피에서는 그 자리를 캐릭터 ‘깜자’가 대신한다. 원본을 모르면 그저 귀여운 캐릭터 책갈피지만, 알고 보면 19세기 프랑스의 가난과 비참한 현실을 그린 대작 속 어린 코제트를 깜자가 ‘연기’하고 있는 셈이다.

책을 읽어본 사람에게는 “아, 그 표지!” 하는 반가움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원본을 찾아보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빵은 다 먹고 없어져도, 고전을 귀엽게 비튼 책갈피 한 장은 손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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