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희대의 식인 살인마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앤서니 홉킨스(88)가 남긴 섬뜩한 명대사다. 불과 16분 남짓한 출연으로 전 세계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바로 그 홉킨스가 최근에는 전혀 다른 얼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번에는 배우가 아니라 ‘작곡가’다.
작곡가 홉킨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니발 렉터와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또 하나의 ‘반전 스토리’가 있다. 스크린에서는 사람의 간과 와인을 이야기하며 관객을 얼어붙게 했던 그에게도 평생 잊지 못한 맛이 있다고 한다. 바로 어린 시절 아버지가 구워준 ‘빵’이다.
홉킨스는 1937년 영국 웨일스 남부 포트탤벗의 제빵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리처드 아서 홉킨스도 제빵사였고 할아버지 역시 빵을 구웠다. 가족은 빵집 위층에서 살기도 했다. 아버지는 새벽 4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고 휴가도 제대로 가지 못할 만큼 고된 삶을 살았다. 훗날 홉킨스는 그런 부모를 떠올리며 “그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고 내게 삶의 가치관을 물려줬다”고 회상했다. 할아버지 역시 제빵사였다는 사실도 여러 인터뷰에서 이야기했다.
고단하게 일하던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위해 챙겨놓는 것이 있었다. 오븐 안에 남겨둔 빵 한 덩이였다. 홉킨스는 그 빵을 발견하면 잘라서 버터와 땅콩버터를 바르고 바나나까지 얹어 먹었다. 얼마나 좋아했던지 훗날 당시 자신을 ‘야만인’ 같았다고 표현했다. 빵을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괴물’이었다는 농담도 했다.
홉킨스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거칠고 무뚝뚝했지만 평생 자신의 몸을 써가며 일한 사람이었다. 폐렴에 걸려 땀을 흘리면서도 생계를 위해 빵을 만들었고, 말년에는 의사가 오랜 노동으로 심장이 커졌다고 말할 정도였다. 홉킨스 역시 배우로 크게 성공한 뒤에도 자신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면 아버지를 빼놓지 않았다. “나는 원래 포트탤벗에서 아버지의 빵집에서 일하고 있었어야 할 사람”이라는 식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 아버지와 고향의 기억이 80여 년 뒤에는 음악이 됐다. 이번 앨범에 실린 ‘마이 파더랜드(My Fatherland)’다. 웨일스 전통 선율과 자신이 태어난 땅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 곡이다. 아내 스텔라에게 바친 ‘스텔라 아리아(Stella Aria)’, 조카를 위한 ‘타라(Tara)’ 등 앨범 곳곳에도 가족과 고향의 흔적이 담겼다.
홉킨스는 ‘양들의 침묵’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데 이어 ‘남아있는 나날’, ‘닉슨’, ‘아미스타드’, ‘두 교황’ 등에서 굵직한 연기를 선보였다. 마블 ‘토르’ 시리즈에서는 신들의 왕 오딘을 연기했고, ‘더 파더’에서는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 역으로 83세에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한니발 렉터부터 오딘까지 수많은 얼굴로 살아온 60여년의 배우 인생 뒤에서 그는 꾸준히 피아노를 치고 곡을 써왔다. ‘양들의 침묵’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 훨씬 전 시작한 음악은 그렇게 그의 곁에 평생 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