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 (출처: Army Signal Corps photographer LT. Stephen E. Korpanty; restored by Adam Cuerde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45년 9월 2일 오전 9시, 일본 도쿄만에 정박한 미 해군 전함 미주리호 갑판 위로 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가운데 4만 5000톤급 거함의 갑판에는 미국, 영국, 소련, 중국 등 연합국 장성과 취재진이 도열해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의 종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갑판에 오른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쓰 마모루와 육군 참모총장 우메즈 요시지로는 굳은 표정으로 준비된 테이블 앞에 섰다. 연합국의 무조건 항복 요구를 담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는 항복 문서에 일본 대표들이 차례로 서명하자 길었던 침략과 광기의 시대는 마침내 파국을 맞이했다.
이어 연합국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가 서명대 앞에 섰다. 그는 피로 물든 전쟁을 뒤로하고 평화와 인간 존엄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천명하며 연합국 대표 9명과 함께 서명을 마쳤다. 23분간 이어진 간결한 의식 끝에 맥아더가 종료를 알리자 상공으로 수백 대의 연합군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올랐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촉발된 제2차 세계대전은 6년 동안 지구촌 전역을 잿더미로 몰아넣었다. 홀로코스트와 무차별 폭격, 원자폭탄 투하로 이어지며 7000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간 전대미문의 참극은 전함 미주리호 갑판 위 서명 한 장으로 공식적인 막을 내렸다.
전쟁의 종결은 세계사의 판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 아래 신음하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식민지 민족들은 해방의 전기를 맞이했다. 한반도 역시 35년 일제 강점의 사슬을 끊어냈으나, 뒤이어 닥친 미소 양 진영의 대립과 냉전 체제의 서막이라는 또 다른 격변에 직면해야 했다.
총성이 멎은 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80여 년 전 미주리호에서 맺은 평화의 서약은 여전히 깊은 울림을 준다. 침략과 전쟁이 남긴 상처를 직시하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역사적 성찰이야말로 이날의 역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에게 던지는 준엄한 경고이자 불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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