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이달에 다가오는 한가위는 신라 유리왕 때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는 말처럼 한가위는 모든 것이 풍성한 날이다. 한가위라는 말에는 '가운데'라는 뜻의 '한'과 '가위'가 어우러져 있다. 한가위는 한 해의 가운데에서 풍성한 결실을 나누는 때이며,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시간이다.
필자는 오랜 세월을 한국어를 가르치며 살아왔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를 양성해 온 사람으로서 명절 때마다 눈여겨보는 것은 음식이나 귀성 행렬만이 아니다. 필자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을 생각해 본다.
한가위 언어의 본질과 개각이 던진 화두
"잘 지내셨습니까?"
"건강하십니까?"
"많이 드세요."
"조심해서 올라가세요."
명절의 말은 대체로 상대방을 향한다. 내가 무엇을 주장하기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보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래서 명절의 언어에는 평소보다 '우리'가 많고 '나'가 적다. 이것이 우리 삶의 원천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한가위는 우리 사회에 특별한 질문을 던진다.
강훈식 비서실장이 8월 30일 청와대에서 인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뉴스1 이재명 기자
지난 8월 30일 이재명 대통령은 집권 2년 차 '2기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6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한꺼번에 지명했다. 재정경제부·국방부·국토교통부·중소벤처기업부·성평등가족부와 법무부 등이 대상이 되면서 당초 예상했던 순차 개각보다 폭이 커졌다. 개각은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이자 국정운영의 방향을 새롭게 보여주는 정치적 행위다. 경제와 부동산, 국방과 사법, 중소기업과 가족 정책 등 국민의 일상과 직결된 분야의 책임자가 바뀌는 만큼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한국어학자의 입장에서 개각을 바라볼 때 한 가지를 더 묻고 싶다. 사람이 바뀌는 것보다 말이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정치는 결국 말로 시작한다. 정책도 말로 설명하고, 국민의 동의도 말로 구하며, 갈등 역시 말로 조정한다. 장관이 몇 명 바뀌느냐보다 새롭게 임명된 사람들이 국민에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까닭이다.
공허한 정치 구호 넘는 소통의 성숙한 정치 필요
정치에는 늘 비슷한 어휘들이 따라다닌다. '쇄신', '통합', '민생', '개혁', '실용', '국민주권'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이런 단어들은 모두 좋은 뜻을 담고 있다. 그러나 좋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좋은 정치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언어는 단어가 아니라 사용하는 방식에서 그 진정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통합'을 말하면서 상대를 적으로 규정한다면 그 통합은 공허하다. '민생'을 말하면서 국민의 불안을 듣지 않는다면 그 민생은 구호에 머문다. '쇄신'을 말하면서 자신의 편만 바라본다면 쇄신은 회전문 인사(?)에 지나지 않는다.
반대로 정치적 입장이 다르더라도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며, 국민의 불편과 불안을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정치는 한 단계 성숙한다. 그래서 이번 개각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단순히 '누가 장관이 됐는가'만이 아니다.
새 장관들이 어떤 말을 하는가, 그리고 국민의 말을 얼마나 잘 듣는가를 봐야 한다. 이번 개각을 둘러싸고 여야의 평가가 크게 엇갈리고 있고, 정기국회와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치적 긴장도 높아질 전망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더 정확한 말이다. 더 책임 있는 말이다. 이것이 한가위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가치 존중과 성숙한 정치권 언어로 전환 기대
한가위의 풍성함은 혼자 많이 갖는 데 있지 않다. 가진 것을 나누는 데 있다. 정치의 성과 역시 권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얼마나 나아지게 하느냐에 있다. 이번 개각이 성공하려면 새로 임명되는 장관들이 먼저 국민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돼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 역시 인사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사에 대한 비판과 우려까지 경청할 필요가 있다. 정치는 국민에게 말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말을 듣는 일이기 때문이다.
언어학에서는 의사소통을 단순히 '말을 전달하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서로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 본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정부가 말하고 국민이 듣기만 하는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이번 한가위에는 정치권에서도 그런 언어가 조금 더 많아졌으면 한다.
이번 개각이 대한민국의 '사람'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한민국의 '말'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함께 나누는 우리!' 이것이 이번 한가위에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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