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돌담길 걷고, 왕의 온천서 힐링…따뜻한 쉼표가 있는 아산[여행]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9월 04일, 오전 05:01

[아산(충남)=글·사진 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일상의 속도가 벅차게 느껴질 때,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어가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서울과 수도권에서 전철이나 기차가 잘 연결돼 있어 부담 없이 닿을 수 있는 ‘충남 아산’은 최적의 휴식처다. 500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풍경과 온천의 온기가 한데 어우러져 짧은 일정 속에서도 깊은 채움을 선사한다.

외암민속마을 전경 (사진=오희나 기자)
외암민속마을 전경 (사진=오희나 기자)
◇500년 전 풍경 그대로 ‘외암민속마을’

여행의 첫 목적지는 아산 송악면에 자리한 ‘외암민속마을’이다. 설화산이 마을 뒤편을 병풍처럼 포근하게 감싸고, 앞쪽으로는 탁 트인 논과 물길이 펼쳐져 있어 도심의 빌딩숲에 지쳤던 눈이 시원하게 트였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정겨운 장독대와 널찍한 마당, 오랜 세월을 견뎌낸 큰 나무들이 어우러진 마을 전체가 한 폭의 수묵화와 같다.

외암민속마을은 약 500년 전 예안 이씨 집성촌으로 형성된 곳이다. 충청도 양반가의 고택과 정겨운 초가, 구불구불한 돌담길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역사 박물관이다. 외암민속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일상을 이어가는 살아있는 민속마을이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인위적인 전시 공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삶의 온기가 느껴진다.

외암민속마을 전경 (사진=오희나 기자)
외암민속마을 전경 (사진=오희나 기자)
마을 입구의 졸졸 흐르는 물길과 예스러운 돌다리를 건너면 초가지붕과 울창한 나무, 사람 키 높이의 이끼 낀 돌담길이 여행자를 반긴다. 외암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돌담길이다. 마을을 따라 이어지는 돌담길은 약 5.3㎞에 달하는데, 길을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담장 한쪽에 핀 꽃이 눈에 들어온다. 또 한발짝 내딛으면 돌담 위로 뻗어나와 그늘을 만들어주는 감나무가, 또 한발짝 옮기니 돌담길 너머 세월의 흔적이 쌓인 장독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돌담길을 따라 목적 없이 걷다 보니 흙냄새와 바람 소리에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고 머리가 비워지는 기분이다.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사진=국가유산청)
외암민속마을 건재고택 (사진=국가유산청)
외암민속마을의 오래된 고택중 하나인 ‘건재고택’은 영화 촬영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클래식’ 등이 촬영됐다고. 실제로 고택 주변을 걷다 보면 배우가 등장할 것 같은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만큼 시간의 흔적이 선명하다.

특히 건재고택은 전통 한옥 뿐만 아니라 근대기의 건축적 변화까지 살펴볼 수 있다.

전통 한옥에서 사랑채 앞마당은 대개 빈 공간으로 남겨두거나 간단한 화단 정도만 꾸미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당은 채광·통풍은 물론 타작, 제례, 손님 접대 등 실용적 기능을 우선하는 ‘비워둔 공간’의 개념이 강했다. 반면 건재고택은 사랑채 앞 넓은 마당을 연못, 정자, 석물(괴석)과 소나무·향나무·단풍나무 등을 촘촘히 심은 조경 정원으로 채웠다.

일제강점기 당시 후손 이용기가 일본을 다녀온 뒤 거북섬 조성 등 일본 정원 기법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넓은 공간을 비워두는 대신 자연경관을 인위적으로 압축해 배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문간채와 사랑채, 안채로 이어지는 기본틀 속에 일본식 정원 기법의 특징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와 근대가 교차하는 독특한 건축적 가치를 지닌 셈이다.

외암민속마을 거북선빵 (사진=오희나 기자)
외암민속마을 거북선빵 (사진=오희나 기자)
마을을 둘러본 뒤에는 자녀와 함께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시그니처 프로그램인 ‘떡메치기’ 현장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커다란 나무 절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찹쌀을 넣고 아이와 부모가 함께 큰 떡메를 들어 올렸다 쿵쾅쿵쾅 내리칠 때마다 둔탁하고 찰진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진다. 방금 친 떡에 고소한 콩가루를 묻혀 즉석에서 맛보는 인절미는 잊을 수 없는 별미다.

자연의 색을 담아내는 ‘천연 염색 체험’도 인기다. 쪽(청색), 치자(노란색), 소목(붉은색) 등 자연에서 얻은 천연 재료를 풀고 손수건이나 티셔츠를 천천히 적셔낸다. 매듭을 묶는 방식이나 염색 시간에 따라 천마다 각기 다른 무늬와 자연스러운 빛깔이 피어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기념품을 만들수 있다.

온양온천전통시장 (사진=오희나 기자)
온양온천전통시장 (사진=오희나 기자)
◇정겨운 입담과 추억이 쌓인 ‘온양온천 전통시장’

외암민속마을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이동한 곳은 ‘온양온천 전통시장’이다. 온양온천역에서 걸어서 닿을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좋고 다양한 먹거리가 모여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와 음식 냄새에 시장기를 돌았다. 갓 튀겨낸 튀김과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채소와 생선 등이 시장의 활기를 느끼게 했다. 대형 쇼핑몰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정겨운 인사와 흥정, 손님과 상인이 주고받는 짧은 대화가 골목 곳곳에서 이어졌다.

대형 마트에서는 판매가가 정해진 물건이 정해진 자리에 있어 필요한 물건을 효율적으로 구매하는 데 집중하게 되지만, 전통시장에서는 물건을 고르는 과정 자체가 여행이 된다. 비슷한 물건을 파는 가게중 어떤 가게의 물건이 싸고 괜찮은지, 무엇을 맛볼지 누구와 이야기를 나눌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에요?” “깍아주시면 안되요?” 오랜만에 가격 흥정을 해보니 재밌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손을 잡고 있던 아이에게 왜 물건값을 깍느냐고 핀잔만 들었다.

시장기가 돌아 독특한 상점 이름이 걸린 ‘알을 품은 닭강정’에서 걸음을 멈췄다. 닭강정 속에 계란이나 메추리알이 들어가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을 품은 닭강정’ 대표는 “처음엔 계란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아 닭강정으로 메뉴를 바꾸게 됐다”며 “10년 정도 장사를 했는데 어렸을 때 와서 먹고 가던 학생들이 지금은 자녀들을 데리고 다시 찾고 있다”고 전했다.

가게 이름에 담긴 사연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 뒤에 이어진 시간의 이야기였다. 한때 학생이었던 손님이 부모가 돼 자녀와 함께 다시 시장을 찾는다는 것은 음식이 한 사람의 기억 속에 그만큼 오래 남아 있다는 뜻일 것이다.

닭강정 한 상자에는 부모님이 시장에서 사오신 간식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과 이제는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은 가게를 찾는 현재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과 추억이 쌓인 공간이라는 것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온양온천전통시장 (사진=오희나 기자)
온양온천전통시장 (사진=오희나 기자)
◇‘왕의 온천’에서 누리는 재충전

시장 구경을 마친 뒤에는 ‘온양온천’ 숙소에 짐을 풀고 여행의 피로를 씻어낼 차례다. 온양온천은 세종과 세조 등 조선의 여러 임금이 병을 치료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았던 ‘왕의 온천’이다. 역 주변으로 다채로운 온천탕과 숙소들이 밀집해 있어 동선을 짜기에도 수월하다.

특히 가족 단위 여행객이라면 실내외 워터파크와 이벤트탕, 스파 테라피 시설을 갖춘 리조트형 숙소를 추천한다. 아이들은 따뜻한 온천수 물놀이장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고 부모들은 매끄러운 온천수에서 쌓인 피로를 풀 수 있다. 온천욕을 마친 후 숙소에 모여 시장에서 사 온 간식을 나눠 먹는 순간은 아산 여행이 주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높은 빌딩 숲과 바쁜 일상에 지쳐있다면 이번 주말 충남 아산으로 떠나보자. 500년 돌담길의 고요한 정취와 전통시장의 활기 그리고 온천의 따뜻함이 지친 몸과 마음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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