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복권'과 '확률 복권'으로 읽는 한국 사회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9월 07일, 오전 06:01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인사조직전략 명예교수가 공정성 논쟁과 능력주의의 한계를 짚은 '복권 사회의 정의'를 펴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학 인사조직전략 명예교수가 공정성 논쟁과 능력주의의 한계를 짚은 '복권 사회의 정의'를 펴냈다. 책은 개인이 통제하기 어려운 운이 삶의 격차를 좌우하는 현실을 '복권 사회'로 규정하고, 공정을 넘어 공의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책이 겨누는 지점은 노력과 성취의 언어가 출발선의 차이를 가리는 방식이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 타고난 재능과 외모, 성장 환경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지만 삶의 조건을 가른다. 저자는 이를 '유전자 복권'으로 묶어 능력주의가 어떻게 우연에서 비롯된 격차를 개인의 실력으로 바꾸어 설명하는지 살핀다.

부동산·주식·코인 투자처럼 시점과 기회에 좌우되는 선택은 '확률 복권'의 영역으로 제시한다. 노동과 저축만으로 원하는 삶에 이르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질수록, 한 번의 기회로 격차를 뒤집으려는 기대가 새로운 복권판을 만든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성공에는 운과 사회가 제공한 조건도 작용하지만, 결과의 책임은 개인에게만 돌아가는 구조를 함께 짚는다. 아울러 공정한 절차와 분배만으로 세대 갈등, 양극화, 공동체 불신을 풀기 어렵다고 본다. 각자가 받은 몫을 비교하는 공정성 논쟁이 제로섬 경쟁으로 흐를 때, 정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기준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념은 '공의'다. 현재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미래 세대까지 고려하는 관점이다. 저자는 공정성과 공의를 '정의의 빙산'으로 설명하며, 제도적 해법과 함께 공동체를 지탱하는 공의의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체 8장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과 공동체 논의를 출발점으로, 유전자 복권과 무지의 커튼, 공정성의 사회심리학을 차례로 다룬다. 공의의 핵심 요소로는 공동체의 지속가능성과 연결되는 '존재 목적', 불리한 조건에 놓인 사람과 미래 세대의 아픔을 받아들이는 '긍휼', 공동의 목적을 위해 역량을 모으는 '코즈'(Cause)를 든다.

후반부는 공의가 사라질 때 사회적 신뢰와 행복, 정당성이 흔들리는 과정을 검토한다. 법에 의존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현상을 공동체 붕괴의 전조로 바라보고, 처벌의 이중잣대가 낳는 공분도 공정성의 문제로 다룬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도 구조 문제를 개인의 결함으로 돌리는 사례로 언급한다.

인공지능이 노동과 전문성, 계층 구조를 바꾸는 환경도 책의 중요한 축이다. 지식과 전문성이 보편화하는 시기에 인간에게 필요한 질문은 능력의 크기보다 그 능력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있다는 것이다. AI와 로봇이 바꾸는 경쟁 환경 속에서 타인의 결핍을 수용하고 협업할 수 있는 공동체의 조건을 찾는다.

윤 교수는 이화여대 경영대학에서 인사조직전략을 연구했고, 미국 코넬대 조직행동학과 겸임교수로 20년간 집단동학을 연구했다.

△ '복권 사회의 정의'/ 윤정구 지음/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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