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성보박물관장 고정 스님이 7일 서울 대한불교조계종역사박물관에서 금용당 일섭 스님의 연보를 펼쳐 보이고 있다.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불교미술가 금용당 일섭 스님(1900~1975)의 삶과 작품을 모은 전집이 출간됐다. 이번 전집은 10여 년동안 추적과 연구를 통해 조선시대의 미술 전통을 이어받아 제주부터 만주까지 활동한 일섭 스님의 기록과 작품을 함께 엮었다.
전집 '한국 근현대 불교미술의 비수갈마: 금용 일섭'에는 250여 곳의 사찰과 서원 등을 조사해 정리한 불상 95건 2607점과 불화 383점이 담겼다. 비수갈마는 불교에서 건축·조각·공예를 담당하는 신을 뜻한다.
조사단은 일섭 스님이 남긴 생애 기록을 따라 작품이 있던 곳을 방문하고, 남아 있는 작품과 관련 증언을 확인했다. 송광사성보박물관장 고정 스님이 총괄한 조사와 연구는 10여년간 이어졌다.
일섭 스님은 그림과 조각뿐 아니라 단청(전통 목조 건물에 여러 색으로 무늬를 그리는 장식)과 문화유산 보수에도 참여했다. 전집은 작품 제작과 함께 제자를 가르친 활동을 다루고, 5대 280여 명의 문도(스승의 가르침을 잇는 제자들)로 이어진 계보도 정리했다. 작품의 형태와 제작 과정, 기술을 전한 사람들의 관계를 함께 살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신은영 송광사성보박물관 학예사와 송은석 동국대학교 WISE캠퍼스 교수가 공동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책을 엮었다. 전집은 생애 기록과 인물 관계, 조각과 그림, 제작용 밑그림, 건물 채색과 교육·사회활동 자료를 권별로 나눴다. 작가가 직접 쓴 기록과 현존 작품을 대조하며 근현대 불교미술의 제작 현장을 읽을 수 있는 구성이다.
여러 스승에게 배운 일섭, 김제 부용사에서 제자 양성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인 일섭 스님은 연봉 봉린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림을 시작했다. 이후 보응 문성에게 배우고 고산 축연과 춘화 만총도 찾아가 가르침을 구했다. 이들은 사찰의 그림 제작을 맡은 화승(불교 그림 등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스님)들이었다.
일섭 스님은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전국 사찰의 그림과 조각 제작, 건물 장식과 보수 현장에 참여했다. 전통적인 제작법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예술적 흐름도 받아들였다. 활동 범위는 한 사찰이나 지역에 머물지 않고 제주와 만주에까지 이르렀다.
일제강점기에는 김제 부용사에 불교 조각과 그림을 가르치는 연구·교육 기관을 세웠다. 전통문화가 위축되던 시기에 전문 제작자를 길러내려는 활동이었다. 작품을 직접 만드는 일과 후학에게 기술을 전하는 일을 병행하며 교육을 이어갔다.
자신의 활동을 기록으로 남긴 점도 일섭 스님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다. 친필 '연보'(삶의 사건과 활동을 시간순으로 적은 기록)에는 작품 제작뿐 아니라 함께 일한 제작자들의 이름과 활동도 담겼다. 개인의 행적을 넘어 여러 사람이 함께한 작업 현장을 확인할 단서가 남은 것이다.
금산사·조계사 작업에서 북한에 남은 조각까지
1935년 일섭 스님은 김제 금산사 미륵불(미래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부처의 상) 조성 경쟁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 일을 거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그림에 더해 조각 제작에서도 활동의 기반을 넓혔다.
1938년에는 당시 태고사였던 현재의 조계사에서 단청(전통 목조 건물에 여러 색으로 무늬를 그리는 장식)과 후불탱화(불상 뒤에 거는 그림) 제작을 맡았다. 이후 개금(낡은 불상 표면에 금칠을 다시 입히는 보수 작업) 등으로 작업 영역을 넓혔다. 1972년에는 단청장(전통 건축물의 채색 장식 기술을 전승하는 장인)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북한에도 일섭 스님의 작품이 남아 있다. 영변 보현사의 사천왕상(불교 세계의 사방을 지키는 네 수호신을 표현한 조각)과 개성 안화사의 오백나한상(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른 500명을 표현한 조각)이 그 사례다. 남북에 흩어진 작품은 그의 활동 지역과 제작 범위를 보여준다.
일섭 스님은 작품 제작을 신앙과 예술적 완성도를 함께 추구하는 수행의 과정으로 여겼다. 1960년 고성 옥천사 팔상전에서 불화(불교의 신앙 내용을 표현한 그림)를 제작할 때는 함께 작업한 이들과 다라니(불교의 가르침을 담아 외우는 주문)를 읊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팔상전은 석가모니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타낸 그림을 모신 전각이다.
유품에서 출발한 6권, 생애 기록·작품·교육 자료로 구성
전집 편찬은 2014년 김제 부용사 지관 스님이 일섭 스님의 유품을 송광사성보박물관에 기탁하면서 시작됐다. 유품은 2024년 정식 기증으로 이어졌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록 속 작품의 소장처를 찾아 조사했다.
제1권에는 친필 '연보'(삶의 사건과 활동을 시간순으로 적은 기록)의 석문(원본의 글자를 판독해 옮긴 글)과 번역을 실었다. 일섭 스님의 생애와 예술관, 동료·제자들과 함께한 활동을 읽을 수 있다. 제2권은 그림을 전문으로 제작한 스님들의 계보와 기록에 등장하는 인물·사찰을 정리하고, 번역문과 원본을 찾아보기 위한 색인을 갖췄다.
제3권은 불상, 제4권은 불화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현존 작품과 조사 과정에서 새로 확인한 작품을 함께 수록했다. 제5권에는 일섭 스님이 제작과 후학 교육을 위해 평생 모으고 정리한 초본(채색 전에 그려두는 밑그림이나 도안)을 담았다.
제6권은 단청과 수집한 옛 책, 교육 자료를 다룬다. 불교미술전과 대한불교미술협회 창립 등 사회활동 자료도 함께 실었다. 작품 제작과 기록, 교육, 단체 활동을 나란히 배치해 일섭 스님의 예술이 만들어지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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