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3년 임기의 관장직 퇴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9.07. © 뉴스1 김정한 기자
이달 17일, 3년의 임기 만료를 앞둔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이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소회를 밝혔다.
취임 초기 미술계 안팎의 우려와 갈등을 딛고 행정안전부 책임운영기관 평가 S등급 획득, 해외 거장 전시의 성공적 개최 및 기증 성사, 외부 후원금 40억 원 유치 등 굵직한 결실을 맺은 그다.
지난 7일 김 관장을 만나 임기 중 이룬 주요 성과, 그동안 추진해 온 프로젝트의 뒷이야기, 앞으로 한국 미술계가 나아갈 방향, 퇴임 후 활동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3년 임기 동안 관람객이 크게 늘었고 행안부 평가에서 미술관 최초로 S등급을 받았다. 느낌은.
▶취임 당시 목표는 조직 화합을 통해 직원들이 자긍심을 갖고, 전시를 통해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작년 2등급에 이어 올해 최초로 S등급을 달성했는데, 목표에 어느 정도 근접했다고 본다. 3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기에 후회는 없다. 지나간 자리에 직원들이 '그때 재밌게 일했다'고 기억해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데이미언 허스트, 서도호 등 대형 전시에 대해 관객 호응이 높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상업성에 치우쳤다는 시선도 있는데.
▶상업성 논란은 작가의 기존 이미지에서 비롯된 오해다. 작가의 진솔함과 삶의 배경이 작업에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중요하게 봐야 한다. 허스트는 불우한 성장 환경과 삶과 죽음이라는 근원적 질문을 치열하게 작업으로 풀어낸 작가다. 또한 그의 전시와 맞춰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멸을 다룬 '소멸의 시학' 전시를 함께 배치해 균형을 잡았다. 서도호 전시 역시 90년대 한국 개념미술의 흐름을 조명하는 전시와 연계해 특정 개인전이 아닌 한국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읽히도록 기획했다.
-허스트의 경우 최근 그가 자신의 대형 회화 두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성사됐나.
▶허스트가 한국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기획·연출에 깊이 감동했다. 전시작 중 본인이 직접 그리고 깊은 애착을 가진 회화 2점을 기증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중 하나인 '아름답게 폭발하는 막무가내 대혼란과 광기, 무지개의 소용돌이 그리고 죽음의 화산 페인팅'의 경우는 2008년 무렵 세상을 떠난 절친한 친구 세 명을 기리며 그린 것이다. 죽음과 생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시가 30억~40억 원 상당의 수작이다. 세계적인 거장이 미술관에 직접 주요 작품을 기증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데이미언 허스트가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을 약속한 회화 2점. 《아름답게 폭발하는 막무가내 대혼란과 광기, 무지개의 소용돌이 그리고 죽음의 화산 페인팅》, 1999, 캔버스에 가정용 유광 페인트, 전기 모터, 직경 365.8 cm. (욎쪽)과 《인간은 끝내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니》, 2008, 캔버스에 유화 물감, 삼면화, 각: 203.2 × 129.5 cm.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해외 거장전뿐 아니라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 자체가 해외로 역수출되는 성과도 거두고 있는데.
▶우리가 자체 기획한 허스트 전시가 중국 상하이 푸둥미술관으로 그대로 수출된다. 푸둥미술관 측에서도 우리 큐레이터들의 기획과 공간 연출을 높이 평가해 그대로 가져가길 원했다. 기획에 맞춰 기증받은 허스트의 작품도 우리 소장품 자격으로 전시에 함께 출품된다. 서도호 전시 역시 일본 도쿄도미술관 등으로 순회할 예정이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 전시를 들여오는 데 그치지 않고 수출하는 단계로 올라섰다.
-취임 초 재정 부족과 인력난으로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 그럼에도 예산 확보와 외부 펀딩에서 괄목할 성과를 냈는데.
▶부임해 보니 예산과 인력 부족이 심각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재부와 행안부를 직접 발로 뛰며 설득해 해외 전시 예산 30억 원, 지역 동행 예산 50억 원, 교육동 레노베이션 예산 30억 원을 따냈고, 8명의 학예사 인력도 확보했다. 또한 비영리 재단을 운영했던 노하우를 살려 기업들을 발로 뛰며 설득한 끝에, 취임 초 10억 원대 후반이던 외부 후원금을 40억 원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다변화된 펀딩 구조를 안착시켰다.
-취임 후 전시 해설을 중학생 수준으로 낮추고 작품 수를 덜어내라고 주문하는 등 '친대중적 변화'를 이끌었다.
▶외부에서 볼 때 미술관 문턱이 너무 높고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졌다. 난해한 전문 용어 대신 누구나 읽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설 글씨 크기와 조명을 개선하고 눈높이를 낮추라고 지속해서 요구했다. 큐레이터의 의욕이 앞서 작품을 과도하게 채워 넣으면 관객은 피로감을 느낀다. 장욱진, 이대원 전시 등에서 작품을 덜어내 여백과 휴식을 주도록 했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인 만큼 누구나 관객으로 미술관에 편안하게 다가와 쉴 수 있어야 한다.
7일,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3년 임기의 관장직 퇴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데이미언 허스트가 기증하기로 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2026.09.07. © 뉴스1 김정한 기자
-취임 초기 관장으로서 조직을 혁신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어떤 원칙을 세우고 추진했나.
▶가장 중요한 것은 관장의 권한으로 행사할 수 있는 소통과 적재적소의 인사였다. 부서 간 소통이 막히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성과를 내지 못한다. 또 조직의 활력을 위해 서울, 과천, 청주 간 순환 보직을 철저하고 공정하게 원칙대로 단행했다. 직원들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예산 집행을 엄정하게 관리했으며, 필요한 경우 단호한 인사 조치로 기강을 잡았다. 대신 안내요원, 미화원 등 이름 없이 묵묵히 일하는 현장 직원들과는 눈을 맞추며 존중의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3년 임기 중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많은 성과를 거뒀다. 그럼에도 완성하지 못해 남겨둔 가장 아쉬운 과제가 있다면.
▶3년은 기관의 중장기 사업을 완성하기에 물리적으로 긴 기간이 아니다. 청주관의 산학·군부대 연계 활성화나 과천관 야외 공간을 활용한 특화 프로그램 등이 이제 막 궤도에 올랐는데 마무리를 짓지 못한 점이 아쉽다. 또한 학예 인력의 고위공무원단 직급 격상이나 큐레이터들의 6개월 이상 해외 중장기 연수 시스템 구축 등 전문 인력의 역량을 키울 기반을 충분하게 다 완성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 미술계에 작품 기증이 잇따르고 있는데, 미술관 차원에서 꼭 다뤄지길 바라는 현안이 있다면 무엇인가.
▶동산방 박주환 대표와 서세옥 화백 유족 등 근간에 귀중한 작품들을 대규모 기증한 분들이 늘었지만, 공간 한계로 기증자별 전시를 열기가 어렵다. 전시장 내 방 하나를 상설 '기증관'으로 지정해 기증자의 이름을 걸고 작품을 상시 순환 전시해야 한다.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지속해서 기리고 예우하는 전용 무대가 마련돼야 사회 전반의 기증 문화도 활성화될 명분이 선다. 이를 온전히 제도화하지 못하고 떠나는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바란다.
7일,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3년 임기의 관장직 퇴임을 앞두고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9.07. © 뉴스1 김정한 기자
-많은 사람이 현대미술을 어려워하는 측면이 있고, 반면에 클래식 작품의 상설 전시 부재를 아쉬워하는 점도 있는데, 이를 해소할 방안이 있다면.
▶현대미술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려면 근대미술의 이해라는 징검다리가 필수적이다. 현재 근대미술을 주로 소화하는 덕수궁관은 석조 건물의 높은 계단, 엘리베이터 부재, 낮은 층고, 수장고 부족 등 전시 환경의 물리적 한계가 뚜렷하다. 이에 따라 명칭 문제로 '이건희 컬렉션' 작품을 전시할 미술관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송현동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운영 주체가 되는 '근대미술관'을 건립하는 방안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서울관 인근 송현동에서 근대와 현대를 유기적으로 잇는 상설 전시를 구축하면 클래식 미술과 현대미술의 불균형을 온전히 해소할 수 있다.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위해 앞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나아갈 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미술은 이제 세계 미술사 속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출발선에 있다. 앞으로의 순탄한 여정을 위해서는 단색화 이후를 이끌 개념미술 등의 담론 형성이 필수적이다. 반짝 흥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세계적 석학들을 초빙해 6개월 이상 머물게 하며 한국 미술을 연구하고 해외 주요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게 하는 '리서치 펠로우십'이 중단 없이 지속돼야 한다. 담론이 탄탄하게 형성되어 해외 유수 미술관을 돌아야 시장에서도 확고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관장직을 내려놓은 후의 활동 계획은.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직에 전념하느라 잠시 손을 놓았던 비영리 전시 공간 '캔(CAN)파운데이션'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곳에서 젊고 유망한 작가들을 보듬는 본연의 작업에 집중할 생각이다. 현장에서 젊은 예술가들을 만나고 그들의 신선한 에너지를 느낄 때 가장 살아있음을 느낀다. 잠시 숨을 고르며 한국 미술계를 위해 기여할 방안을 조용히 모색하겠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