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꼬마도 "양자야, 놀자"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09일, AM 05:06

[이데일리 유준하 기자] 양자물리학, 양자역학 등 일반 독자에게 어렵기만 한 양자에 대해 쉽게 풀어 쓴 책들이 잇따라 출간돼 시선을 끈다. ‘불연속적으로 고정된 양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라는 뜻의 양자를 복잡한 수식 없이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한 ‘양자문명’(김영사)과 히피와 너드 물리학자의 대화로 풀어낸 ‘히피를 위한 양자물리학’(에코리브르)이 그 주인공이다.

한정훈|356쪽|김영사(사진=예스24)
한정훈|356쪽|김영사(사진=예스24)
◇물리학계 권위자가 들려주는 비유와 이야기

‘양자문명’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양자역학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설계했는지를 주목한다. 책은 양자역학에서 가장 난해한 개념인 중첩과 얽힘을 쉬운 예시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낸다. 양자 중첩은 마술사의 양자구슬과 상자 속에 넣어둔 전자의 움직임으로, 양자 얽힘은 고양이와 생쥐의 사과와 귤이 든 봉지를 두고 벌이는 소동으로 설명한다.

저자인 한정훈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처럼 직관적인 비유와 정교한 사고실험을 중심으로 양자역할을 소개한다.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데이비드 사울레스 워싱턴대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와 버클리대 연구원, 건국대 교수를 거친 물리학계의 권위자다.

깊이 있는 이해도를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설명 방식은 수학이란 장벽이 없이도 독자들에게 상상과 감상의 여지를 남긴다. 책은 양자역학 개념을 독자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과 제도, 산업과 생활양식을 낳았는지 다채롭게 풀어 나간다.

나아가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가 바꾸어갈 미래에 대한 논의도 이어간다. 저자는 “이전 문명의 기반 위에 다음 문명의 건축물이 차곡차곡 쌓이듯, 양자컴퓨터가 지금보다 훨씬 발전한 미래에도 인공지능은 계속 막강한 계산의 도구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루카스 노이마이어·제임스 더글러스|192쪽|에코리브르(사진=예스24)
루카스 노이마이어·제임스 더글러스|192쪽|에코리브르(사진=예스24)
◇히피와 너드 물리학자의 대화로 보는 양자역학

‘양자문명’이 쉬운 비유와 스토리텔링을 겸비한 정통 과학 교양서적이라면 ‘히피를 위한 양자물리학’은 전달 방식부터 흥미롭다. 주인공이자 히피족인 남자 ‘밥’은 카페에서 만난 너드(Nerd) 물리학자 ‘앨리스’에게 끌려 양자물리학에 관심이 있다는 괴이한 ‘플러팅’을 하고, 앨리스는 이에 지지 않고 양자물리학의 세계로 밥을 끌어들인다.

책은 주인공이 히피족이라는 장치를 적극 활용해 철학적 관점에서 양자물리학을 소개한다. 서로 관심 분야는 다르지만 세상의 근본적인 진실을 찾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물리학자와 대화를 이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꽤나 신선하다. 그들은 가능성의 춤, 슈뢰딩거의 고양이, 양자얽힘 등을 이야기하면서 삶과 죽음, 사랑과 지혜까지 대화를 뻗어나간다.

내용을 풀어내는 형식 또한 독특하다. 처음엔 주인공인 밥의 시점으로 1인칭으로 시작하는가 싶더니, 두 사람의 대화로 넘어가서는 대본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양자역학의 과학적 개념이 주로 설명된다. 책 말미에는 다시 1인칭 시점으로 돌아와 주인공의 변화를 서술한다. 내용은 과학 이론인데 형식은 사실상 소설이다.

정통 물리학자인 저자들은 양자역학을 열 살짜리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쓰고 싶었다고 한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양자물리학의 진짜 마법을 알려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책을 썼다”면서 “독자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거북목 없는 너드만큼이나 쓸모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목차도 없이 오로지 대화만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이 책의 옮긴이인 곽지원의 번역도 일품이다. 그는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독일어·한국어 통번역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등 여러 언어권의 도서를 우리말로 옮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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