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나이가 번역한 B출판사의 '오디세이아'에는 인터넷 신조어인 '머선129'가 등장한다(이미지=생성형AI).
페넬로페의 꿈에 등장한 환상의 말은 “저는 그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확실하게 말하지 않을 것이고, 헛된 대화는 소용없습니다. 알빠노?(내가 알 바 아니다)”(185쪽)로 옮겼다. 작품 초반 뮤즈에게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는 대목에서는 “그들은 태양신 히페리온의 소들을 먹는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 즉 스스로 불러온 순전한 어리석음 때문에 멸망했기 때문입니다”(10쪽)라는 문장도 나온다.
현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의역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문체, 인물의 성격을 고려하기보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표현을 기계적으로 끼워 넣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전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이것이 원작의 분위기인지, 번역자가 임의로 덧붙인 표현인지조차 판단하기 쉽지 않다.
지난달 말에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끝난 동서양 고전을 제공하던 독서 앱 ‘책도둑’이 AI 번역 논란에 휩싸였다. 책도둑은 평생 이용권 1만 9800원에 고전 730권을 전자책으로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번역문의 어색한 문장과 표현을 잇따라 발견하면서 AI 번역 의혹이 제기됐다. 결국 운영사는 AI를 활용해 번역한 사실을 인정하고 환불 조치와 함께 서비스를 종료했다.
실제로 책도둑에서 제공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는 “그리하여 18세기 독일의 철학자들에게 프랑스 혁명의 요구는 결국 단순히 ‘실천 이성’이라는 보편적 요구어에 불과했다” 등 의미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번역문이 다수 등장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AI가 몇 초 만에 번역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전문 번역가가 쉽게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전문 문학 번역가는 많지 않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번역지원 사업에 참여한 번역가는 44개 언어권 863명으로 집계됐다. 영어가 155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어 117명 △중국어 95명 △프랑스어 81명 △러시아어 63명 △스페인어 62명 △독일어 44명 등의 순이었다. 고전 67종을 번역한 62명 중 고전 번역 이력만 가진 번역가는 30명이었다.
전문 번역가가 되려면 외국어 능력, 그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정규과정에서는 △번역 언어 글쓰기와 번역실습 △번역실무 △한국문학·문화콘텐츠 이해 등을 가르친다. 학생들은 실제 작품을 번역하고 원작자와 작품에 관해 논의하며, 해외 출판 전문가에게 번역 원고와 출판제안서에 대한 의견도 받는다.
긴 훈련을 거치는 이유는 문학 번역이 단순히 단어를 다른 언어로 치환하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표현을 옮길 때도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인물 간 관계, 작가의 문체와 함축된 의미, 해당 문화권의 정서까지 함께 판단해야 한다.
윤선미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교수는 “번역은 작품의 이야기 전개와 인물 관계를 모두 고려하고,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갈 정도로 작품 전체를 이해한 뒤 해야 한다”며 “사람들은 이미 쓰여 있는 글을 다른 말로 바꾸는 게 번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처음부터 작품을 다시 쓰는 일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작품을 4~5명이 번역하면 모두 다른 문장이 나오면서도 각각 맞는 번역일 수 있다”며 “그만큼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AI를 활용한 책과 인간이 쓴 책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출판계에서도 AI 출판물의 품질과 책임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박정인 덕성여대 AI 다이나인포(DynaInfo)연구소 교수는 “AI가 번역문의 대부분을 만들었는데도 인간 번역가나 전문가가 번역과 검수를 주도한 것처럼 홍보했다면 소비자의 구매 판단에 중요한 정보를 누락한 기만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며 “AI가 어느 부분을 번역했는지, 인간이 원문을 얼마나 대조하고 수정했는지, 소비자에게 어떤 내용으로 홍보했는지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미나이가 번역한 B출판사의 '오디세이아'에는 인터넷 신조어인 '알빠노'가 등장한다(이미지=생성형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