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명제의 새로운 의미[정덕현의 끄덕끄덕]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09일, PM 01:45

정덕현
[정덕현 문화평론가] 8월 말에 부산과 경주를 다녀왔다. 부산은 올해로 14회를 맞은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때문에 찾았고 경주는 가족여행으로 갔던 것인데 두 도시의 풍경이 과거와는 너무나 달라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적잖게 놀랐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거의 일상처럼 도시를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 해운대는 해변부터 길거리, 음식점, 호텔 어디에서나 다국적의 언어들이 들려왔다. 경주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대릉원을 아침 새벽부터 나와 마치 자기 집 앞 공원처럼 조깅을 하는 외국인들이 적지 않았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왔던 찻집이나 술집에는 당연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둘러앉아 익숙하게 냉오미자차나 막걸리를 마시는 풍경이 펼쳐졌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급증했다는 뉴스는 이미 봐 왔지만 그들이 이제는 지방까지도 진출(?)했다는 사실이 실감나는 시간들이었다.

한때 한국 콘텐츠의 인기 현상을 지칭하던 ‘한류’라는 표현은 최근 들어 ‘K컬처’라는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한류가 콘텐츠의 흐름에 중심을 둔 표현이라면 K컬처는 바로 그 콘텐츠로부터 촉발돼 이제 한국의 일상 문화 전반으로 옮겨간 흐름을 담는 표현이다. 즉 콘텐츠의 인기가 이제는 관광부터 푸드, 뷰티, 패션 그리고 라이프 스타일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흐름에서 두드러지는 건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패턴 변화다. 드라마 등에 담긴 한국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고 싶은 그들은 이제 면세점이나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 혹은 전통 기념품을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한국인들이 실제 일상에서 입는 옷을 입고 한국인들이 실제 사용하는 가성비 좋은 화장품을 구매하며 나아가 한국인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핫플레이스를 찾아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그저 한 발 떨어져 바라보는 수동적인 ‘관광’이 아니라 보다 한국인들의 일상 깊숙이 들어오려는 능동적인 경험을 원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CJ 올리브영의 폭발적인 성장이다. 올리브영 전국 오프라인 매장에서 발생한 외국인들의 누적 구매액은 2025년 기준으로 1조원을 돌파했다. K콘텐츠가 촉발한 K뷰티의 바람을 타고 올리브영이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떠오른 것이다. 이런 흐름은 K패션에서의 무신사 열풍으로도 이어졌다. 무신사 스탠다드의 명동, 성수, 홍대 등 글로벌 고객 특화 매장 5곳의 외국인 고객 구매 비중은 평균 50% 안팎에 달한다고 한다. 특히 성수동에 문을 연 무신사 메가스토어 성수는 개점 50일 만에 누적 거래액 70억원을 돌파했는데 그중 40% 이상인 약 30억원이 외국인들의 지갑에서 나왔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K뷰티나 K패션의 성장이 K콘텐츠의 일방적인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여기에는 그만한 경쟁력을 갖춘 해당 분야의 단단한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K뷰티가 단적인 사례다. 한때 대기업과 럭셔리 브랜드 중심이었던 화장품 수출 시장의 주도권이 이제 창의적인 콘셉트와 명확한 효능 그리고 빠른 기동력을 갖춘 중소 인디 브랜드로 넘어가게 된 건 우연이 아니었다. 현재 한국의 화장품 수출액은 2025년 약 114억달러를 기록하며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수출국으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K콘텐츠의 인기를 활용하는 SNS 전략과 어성초 같은 한국적인 성분의 발굴, 그리고 한국콜마 같은 기업으로 대변되는 세계 최고 수준의 ODM(제조자 개발생산) 인프라 같은 것들이 하나의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성분을 발견해내고 상품 생산에서 ODM 인프라를 활용해 압도적인 속도의 출시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유행을 선도하며 이를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는 한국 배우들을 활용한 SNS 마케팅으로 압도적인 입소문을 만들어내고 이 입소문을 바탕으로 아마존 같은 온라인 매장에서 완판을 기록한 후 매력적인 공간 구성과 체험존을 갖춘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이 하나의 성공 방정식처럼 자리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적인 K뷰티가 갖는 철학, 즉 그저 피부만 가꾼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까지 챙겨야 한다는 ‘웰니스’의 개념이 주는 매력도 한몫을 차지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화장품 매장에서 건강한 K푸드까지 판매하는 보다 진화한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보다 한국인의 일상을 경험하고픈 외국인 관광객들의 욕망은 ‘웰니스 관광’에서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즉 과거 성형 위주의 의료관광에서 이제는 피부 미용 시술에 보다 집중되는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고주파 레이저 같은 스킨케어 관리가 관광객들이 여행 중 반드시 거쳐야 할 K뷰티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멀리서 바라보는 관광이 아닌 그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으로 외국인들의 욕망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예로 들었지만 사실 이것은 한국인들의 욕망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대릉원 앞에서 그저 사진을 찍는 그런 관광을 이제 한국인들도 더이상 즐기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곳을 산책하고 근처 카페에 앉아 능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보다 일상에 가까운 여행을 원한다.

이처럼 한국인들이 갖는 욕망과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욕망이 이제 똑같아지는 시대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건 무얼 말해주는 걸까. 한때 타국의 문화들을 흉내낸 것들이 훨씬 낫다는 인식이 깨졌다는 이야기다. 그보다는 한국 문화를 보다 세련되게 구현해 내는 어떤 것들이 한국인들에게도 또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간다는 이야기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명제는 그래서 이제 한국 문화의 으쓱함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로컬 문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매력을 발산하게 된다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이야기로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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