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대표는 이 한마디를 건네기 위해 김우옥·한태숙·김아라·이성열·김광보 연출을 직접 찾아다녔다. 이미 자기만의 연극 세계를 완성한 거장들에게 또다시 ‘실험’을 주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보여주는 무대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에서 시작됐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의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다. 김아라를 시작으로 12월까지 다섯 연출가의 작품이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단순히 익숙한 작품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자리는 아니다. 과거의 무대를 그대로 복원하는 대신, 수십 년간 쌓아온 자신만의 무대 언어를 오늘의 관객 앞에서 다시 시험한다.
'쿼드, 연극의 질문들: 진화하는 텍스트'에 참여하는 김우옥(왼쪽부터), 김아라, 한태숙, 김광보, 이성열 연출가(사진=서울문화재단).
가장 먼저 다시 ‘실험대’에 오른 이는 김아라다. 지난 8일 개막한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소리와 빛으로 다시 풀어낸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블랙박스 극장에서 ‘보이는 소리’와 ‘들리는 빛’을 충돌시킨다. 정동환·김성녀·송용진 등이 출연해 글자로 익숙했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복합장르 음악극으로 바꿔놓는다.
김아라 연출가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의 한 장면(사진=서울문화재단).
김우옥은 다음 달 28일 ‘혁명의 춤’으로 관객을 만난다. 1981년 국내 초연한 작품이지만 형식만 보면 45년이 지난 지금도 낯설다. 대사는 단 12마디, 장면은 8개뿐이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작은 플래시 불빛, 반복되는 소리로 ‘혁명’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풀어낸다. 이야기와 대사가 중심이라는 연극의 익숙한 공식을 일찌감치 걷어찼던 작품이다. 40여 년 전의 ‘파격’이 2026년 관객에게도 여전히 파격일 수 있을지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11월에는 이성열의 ‘화염’이 이어진다.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묵직하게 다뤄온 이성열이 2024년 초연한 작품이다. 레바논계 캐나다 작가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을 바탕으로 전쟁과 학살, 한 가족의 비극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용서의 가능성을 파고든다. 어머니가 남긴 유언을 따라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쌍둥이 남매의 여정 속에 전쟁이 한 인간과 가족에게 남긴 상처가 겹쳐진다.
마지막 주자는 한태숙이다. 12월 선보이는 ‘서안화차’는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파격적인 무대 언어를 구축해온 한태숙의 대표작이다. 2003년 초연 당시 동아연극상 작품상·연출상 등 9개의 연극상을 휩쓸었다. 진시황릉을 찾아 중국 시안으로 향하는 주인공 상곤의 여정에 친구를 향한 집착과 과거의 트라우마, 진시황릉 건설에 동원된 고대인들의 고통이 교차한다. 상징적인 오브제와 밀도 높은 공간 구성으로 인간의 집착과 소유욕, 그 밑바닥에 자리한 불안과 구원의 문제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서울문화재단이 이들을 다시 불러낸 데는 지금이 ‘초기술 시대’라는 문제의식도 깔려 있다. 인공지능(AI)과 첨단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빠르게 대신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배우의 몸과 목소리, 눈앞의 관객을 통해 완성되는 연극의 본질을 다시 묻겠다는 것이다. 기술이 할 수 있는 일이 갈수록 많아지는 지금, 가장 인간적인 예술인 연극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수십 년 전 한국 연극의 익숙한 문법을 깨뜨렸던 이들은 이제 70~90대가 됐다. 서울문화재단이 이들에게 맡긴 역할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원로’가 아니다. 다시 한번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가’다. 송 대표가 이미 거장이 된 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마음껏 실험해달라”고 주문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아라 연출가 '더 사운드 오브 맥베스'(The Sound of Macbeth)의 한 장면(사진=서울문화재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