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민의 친구" 택한 호머 헐버트 이야기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September 10일, AM 06:01

[신간] '헐버트 회고록' 표지/뉴스1

'헐버트 회고록'은 육영공원 교사와 고종 황제의 밀사로 활동한 호머 B. 헐버트의 체험을 따라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위기를 되짚는다. 저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소장 원고를 편역해 90여 년 만에 복원했다. '한국 인민의 친구'라 불리는 헐버트가 1920년대부터 1932년 말까지 타자기로 작성한 자서전이 바탕이다.

헐버트의 기록은 조선에 처음 도착한 외국인의 여행담에서 출발하지만, 곧 국권 침탈과 국제정치의 문제로 향한다. 제물포에서 서울로 들어온 여정과 육영공원 수업 풍경, 한국 고대사 연구와 한글·드라비다어 비교 연구가 한 인물의 체험 안에 놓인다.

먼저 1886년부터 1919년까지를 다룬다. 한국과의 첫 만남, 청일전쟁, 을미사변, 아관파천, 독립협회, 러일전쟁, 을사늑약, 헤이그 특사 지원과 파리 강화회의에 이르는 흐름을 묶었다. 고종 황제의 밀사로 워싱턴에 간 여정도 담았다.

육영공원에서 왕이 학생의 시험 성적을 직접 매기던 장면도 실었다. 헐버트는 학생의 실력에 맞춰 '우수'부터 '불합격'까지 네 단계 성적을 정하던 모습을 기록했다. 제물포에 상륙한 뒤 장마를 앞둔 날씨 속에서 서울로 향한 이동 과정도 당시의 생활상을 전한다.

을미사변을 다룬 대목에서는 궁궐 침입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해 혐의자들을 석방한 일본 재판의 판단을 비판한다. 왕비 침실 앞에서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 살해되고 왕비가 피살된 정황도 서술한다. 헐버트는 일본 정부가 사건에 깊이 관여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적었다.

1905년에는 고종의 밀명을 받고 워싱턴으로 향한 과정과 미국 정부의 대응을 남겼다. 헐버트는 일본의 행위를 묵인할지, 한국 인민의 권리를 알릴지 선택해야 했다고 회고한다.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국제법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의 '거중 조정' 조항에 연결해 제기한 대목이다.

일제의 무단 통치와 국제 질서도 다룬다. 3·1운동, 워싱턴 군축회의, 만주사변, 국제연맹을 거치며 일본의 팽창과 서구 열강의 책임, 세계 평화의 조건을 함께 논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과 산둥반도 지배권, 동양과 서양의 대립이 주요 논점이다.

헐버트는 1886년 23세에 육영공원 교사로 한국에 왔고, 1909년 일제에 의해 출국당할 때까지 머물렀다. '사민필지'를 쓴 교육자이자 '코리아 리뷰' 발행과 '독립신문' 영문판 제작에 참여한 언론인, 언어학자로 활동했다.

편역자는 소장 원고의 희미한 본문을 보완하고 350개의 역주와 관련 사진을 더했다. 모두 776쪽에 조선의 일상, 대한제국의 외교, 일제강점기 국제정세가 교차한다. 한 인물의 회고를 통해 한국의 근대와 국제 질서의 관계를 살핀다.

△ '헐버트 회고록'/ 호머 B. 헐버트 지음/ 옥성득 옮김/ 776쪽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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