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화염'(사진=이윤정 기자).
철창을 사이에 두고 남녀가 마주 보는 장면도 시선을 끈다. 촘촘한 철창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을 그린 박영근의 ‘마주보다’다. ‘토지’ 3부 4편 7장 ‘마약의 심연’에서 형무소를 찾은 서희의 장면을 옮겼다. 소설은 그곳을 “일체를 차단하고 만 높은 담벽”과 붉은 벽돌담이 겹친 “우중충한 풍경”으로 묘사한다. 그림에서는 그 막막한 거리를 철창 하나가 대신한다. 바로 앞에 두고도 닿을 수 없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답답한 거리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박영근 '마주보다'(사진=이윤정 기자).
노란빛이 강렬한 작품 앞에서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박영근의 ‘생명의 부활’이다. ‘토지’ 2부 1편 12장 ‘작은 새의 죽음’에서 길상은 새끼를 주워온 소년에게 “새 새끼를 죽여왔다면서?”라고 묻는다. “그냥 두면 굶어 죽을 성싶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살리기 위해 데려왔지만 새끼는 끝내 살아나지 못한다. 화가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에 역설적으로 ‘생명의 부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손 위에 놓인 작은 생명과 화면을 가득 채운 노란색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되묻게 한다.
박영근 '생명의 부활'(사진=이윤정 기자).
26년에 걸쳐 완성된 5부 20권의 방대한 소설에서 그림이 될 장면 30개를 추리는 일은 이승윤 토지학회 회장이 맡았다. 1부에서 10개, 2부 5개, 3부 4개, 4부 5개, 5부 6개를 골랐다. 유명한 장면만 골라 모은 것은 아니다. 첫 그림부터 마지막 그림까지 차례로 따라가다 보면 ‘토지’의 긴 이야기를 한 번 훑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30점의 그림이 거대한 소설을 압축한 하나의 ‘서사 지도’인 셈이다.
전시 제목 ‘하늘의 빛, 땅의 빛’도 ‘토지’ 속 문장에서 가져왔다. 4부 1편 12장 ‘독창회’에 등장하는 구절로, 자연이 가진 여러 빛을 자신의 내면에 담고 싶어 하는 인물의 마음을 표현한 대목이다.
문학과 그림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문학그림전’은 2006년 시작됐다. 박태원·이상·백석·황순원·윤동주·신동엽·김소월·김수영·김춘수·이육사 등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화폭으로 옮겨왔다. 올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박경리의 ‘토지’다. 방대한 소설을 다시 완독할 엄두가 나지 않아도 괜찮다. 서점에 들른 김에 작은 전시장으로 몇 걸음만 옮기면 된다. 글로만 기억했던 ‘토지’의 장면들이 그곳에서 색을 입고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열린다.
문학그림전 ‘하늘의 빛, 땅의 빛-박경리 ‘토지’ 그림으로 만나다’ 전경(사진=교보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