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찾은 시민들이 분단의 상징인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를 둘러보고 있다. 2019.2.27 © 뉴스1
1945년 9월 10일, 서울역을 출발해 신의주로 향하던 경의선 열차가 38도선 인근에서 기적 소리를 삼키며 완전히 멈췄다. 미군과 소련군의 분할 점령으로 그어진 38도선은 반세기 넘게 한반도의 숨통을 틔워온 철길마저 가차 없이 절단했다.
1906년 개통된 경의선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518.5㎞의 철도였다. 일제의 대륙 침략과 수탈 도구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출발했으나, 해방 이후에는 남과 북의 사람과 물류를 잇는 핵심 대동맥으로 자리 잡을 터였다.
열차가 멈추어 서자 일상의 네트워크가 일시에 붕괴했다. 북녘의 지하자원과 전력, 남녘의 식량과 경공업 제품이 오가던 물류망이 차단됐고, 고향과 가족을 지척에 둔 이들의 발길도 영문 모른 채 묶였다. 분단 초기에는 도보나 제한적인 우편 왕래가 간신히 이어졌지만, 38도선이 냉전의 최전선으로 굳어지면서 철길 위에 내린 차단봉은 거대한 철의 장막으로 변해갔다.
달리고 싶어도 달릴 수 없게 된 철길은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흔을 고스란히 체현했다. 이어진 1950년 6·25전쟁은 멈춰 선 철도마저 산산조각 냈다. 장단역에 멈춰 선 채 수천 발의 총탄을 맞고 붉게 녹슬어 간 증기기관차는 남북이 공유했던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파괴되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참혹한 물질적 증거물로 남았다.
세월이 흘러 2000년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경의선 철로가 복원되고 시험 운행이 이뤄지기도 했다. 도라산역에 걸린 '평양 방면'이라는 표지판은 한때 금방이라도 다시 대륙으로 이어질 듯한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 관계와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 기차는 다시 긴 침묵에 빠져들었다.
경의선 운행 중단은 물리적 교통망의 단절을 넘어 한반도의 역사적 상상력과 문화적 지평을 섬으로 가둔 결정적 사건이었다. 끊어진 철길 위로 8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녹슨 레일은 여전히 대륙을 향해 뻗어 나가길 갈망하며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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