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매드 해터'의 한 장면(사진=홍컴퍼니)
이 딜레마는 2인극이라는 형식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조슬린 역의 배우는 노아의 친구인 조슬린부터 권위적인 헥터, 노아와 함께 모자를 만드는 동료들, 작품의 해설자까지 노아를 둘러싼 인물을 모두 연기한다. 가해자와 조력자가 한 배우의 몸에서 교차하는 모습은 인간을 선명한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선과 악이 아닌, 딜레마의 순간 무엇을 선택하느냐이다. 노아는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쪽을 택한다.
뮤지컬 '매드 해터'의 한 장면(사진=홍컴퍼니)
작품은 노동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차별과 혁명적 연대까지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펼친다. 자칫 비장해질 수 있는 서사는 음악을 타고 자연스럽게 안착한다. 빠른 박자 위에서 반복되는 멜로디는 부품처럼 움직이는 노동 현장을, 80인조 오케스트라편곡의 풍성한 사운드는 거대한 사회와 군중을 형상화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피콜로다. 가장 작지만 높은 음을 가진 피콜로는 마치 노아를 상징하는 듯 하다. 공연은 여러 악기의 소리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되는 피콜로의 소리로 마무리된다. 이는 거대한 시스템 앞에 선 노아의 절망처럼 들리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희망으로 남는다.
‘매드 해터’의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도 사회는 효율과 생산성,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난 이들에게 ‘이상하다’는 이름을 붙인다. 그 말은 때로 누군가를 배제해도 된다는 신호로 작동한다. 그래서 ‘매드 해터’는 묻는다. 다수의 선택이 언제나 정상일까. 변화를 향한 외침은 왜 이상하다고 여겨지는가. 정상과 이상을 나누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공연이 끝나도 묵직한 질문은 계속된다.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