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출처: Robert D. Ward,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923년 9월 16일, 영국 식민 지배하의 싱가포르에서 훗날 국부로 불리게 될 리콴유가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가혹한 군정을 겪으며 주권의 절실함을 체감한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법학을 수석 졸업한 뒤, 귀국해 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1954년 인민행동당(PAP)을 창당한 리콴유는 반영(反英) 독립 투쟁을 이끌며 1959년 36세의 나이로 초대 총리에 올랐다. 국가 생존을 위해 말레이시아 연방 합류를 추진했으나, 인종 갈등과 정치 노선 대립 끝에 싱가포르는 1965년 8월 9일 연방에서 강제 축출당했다.
식수조차 수입해야 하는 고립 속에서 그는 독립을 선언하며 눈물을 흘렸으나, 곧 냉혹한 현실주의 노선을 폈다. 다민족 결속과 글로벌 통상을 위해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파격적인 감세와 규제 혁신으로 다국적 기업을 유치했다. 지정학적 입지를 극대화해 금융·물류 중심지로 도약시켰다.
통치 철학의 핵심은 청렴이었다. 고위 관료에게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한편 부패행위조사국(CPIB)을 통해 무관용 원칙을 관철했다. 주택개발청(HDB)을 세워 자가 주택 소유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대대적인 녹화 사업으로 쾌적한 국제도시의 기틀을 마련했다.
빛나는 번영 이면에는 개발독재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반대파 탄압, 언론 검열, 태형 유지 등 통제 정치는 '유모 국가'라는 조롱을 샀다. 그러나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빈곤을 구원할 수 없다며, 질서와 경제적 생존을 우선하는 '아시아적 가치'를 고수했다.
1990년 퇴임 후에도 국가 원로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는 2015년 3월 23일 91세로 생을 마감했다. 늪지대와 판자촌으로 뒤덮였던 제3세계의 작은 항구 도시를 1인당 GDP 8만 달러가 넘는 세계 최강의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시킨 그의 궤적은 강력한 리더십과 실용주의 정치의 표본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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