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거장'이자 언어학자 야코프 그림 사망 [김정한의 역사&오늘]

생활/문화

뉴스1,

2026년 September 20일, AM 06:00

야코프 그림 (출처: Hermann Biow,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1863년 9월 20일, 독일 베를린의 한 자택에서 근대 언어학과 게르만 민속학의 거대한 봉우리 야코프 그림이 78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는 동생 빌헬름 그림과 함께 편찬한 '그림 동화'의 저자이자 유럽 근대 언어학과 문헌학의 기틀을 다진 독보적인 학자이기도 했다.

야코프의 가장 눈부신 학문적 업적은 인도유럽어족 비교언어학의 토대를 세운 '그림의 법칙'(Grimm's Law) 정립이다. 그는 게르만어파 자음 체계가 고대 산스크리트어나 그리스어, 라틴어와 규칙적으로 대응하며 진화해 왔음을 입증했다.

동생 빌헬름과 함께 민담을 채록해 1812년 펴낸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옛날이야기'는 학문적 구국의 산물이었다. 나폴레옹 침략으로 분열과 굴욕을 겪던 독일 민족에게 고유한 정체성을 일깨우고자 구전문학을 집대성했다. 동생 빌헬름이 문학적 윤색을 가미하면서 오늘날 전 세계를 매료시킨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학자적 신념은 연구실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1837년 괴팅겐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하노버 왕국의 군주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1세가 전제정치로 회귀하며 헌법을 일방적으로 폐기하자, 그는 6명의 동료 교수들과 함께 거세게 항의하는 서한을 제출했다. 이른바 '괴팅겐 7인 사건'으로 즉각 파면당하고 국외로 추방되는 수난을 겪었다.

말년의 야코프는 평생의 역작 '독일어 사전' 편찬에 전력을 다했다. 1838년 착수한 이 프로젝트는 두 형제의 생전에는 완성되지 못했다. 야코프가 'F' 항목을 집필하던 중 쓰러지면서 그가 멈춘 원고는 후대 학자들에게 대물림됐고, 작업 시작 120여 년이 지난 1961년에야 총 32권으로 완간됐다.

야코프 그림은 공동체의 역사와 영혼을 건져 올린 지적 탐험가였다. 그가 남긴 언어학적 법칙과 방대한 민담, 목숨을 걸고 지킨 비판적 지성의 태도는 오늘날에도 인문학의 마르지 않는 지적 유산으로 굳건히 살아 숨 쉰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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