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면 안 늙어요"…시니어 합창단의 무한도전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1일, AM 05:03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자, 악보는 오른손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넘기는 거예요. 프로답게요.”

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20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노래 연습실. 본격적인 합창 연습을 앞두고 김형우 지휘자와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원들의 대화에서 화기애애함이 묻어났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잠시, 지휘자의 말에 따라 악보를 넘기는 단원들은 곧바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반주가 시작되고 지휘자가 신호를 보내자 단원들이 서서히 고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니어 합창단의 ‘무한도전’

이곳은 60~70대 여성으로 구성된 시니어 합창단 ‘브라비시모콰이어’의 연습 현장이다. 이날 연습에선 발성부터 표정까지 세세히 챙기는 지휘자와, 매주 함께 노래를 불러온 단원들 사이 신뢰를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의 호흡에서 시니어 합창단이 5년간 쌓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오는 10월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창단 5주년 기념 음악회를 연다.

합창단은 가수 김호중의 팬모임에서 출발했다. 가수와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자연스럽게 합창으로 이어졌다. 지휘자 김형우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던 2022년 합창단을 처음 만났다. 김 지휘자는 “처음엔 합창단이 아니라, 노래방 같았다”며 웃었다. 이어 “발성부터 다시 가르쳤다. 중간에 포기한 분들도 있지만, 재미없어도 꿋꿋이 남은 분들과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원은 20여 명에서 40명 수준으로 늘었고, 실력도 성장했다. 그래도 아마추어 합창단이 KBS홀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건 큰 도전이다. 김 지휘자가 처음 공연을 제안했을 때 단원들은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김 지휘자는 “처음엔 단원들이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며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아마추어 마인드를 말끔히 벗어냈다”면서 “단원들 사이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단원들의 취향도 반영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 지휘자는 “단원들이 원해 김호중의 곡을 넣었다”면서도 “공연의 균형을 고려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 가곡 ‘별’, ‘오 솔레미오’ 등 관객들이 듣기 편한 곡들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11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11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임종 전까지 노래할 것”·“삶의 목표 생겨 기뻐”

이날 연습에서 단원들은 곡마다 분위기에 맞는 표정과 에너지를 보여줬다. 김 지휘자는 ‘우정의 노래’를 부를 땐 경쾌한 곡 분위기에 맞춰 유쾌하게 리드했다. ‘댄싱 퀸’에서는 표정을 밝게 짓자는 지휘자의 주문이 나왔고, ‘행복을 주는 사람’에 이르러서는 감성이 풍부한 단원들의 몰입감이 느껴졌다.

단원들에게 합창은 취미 이상의 의미다. 단원 박성희(73)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잘 차려입고 올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며 “나이가 들면 목표가 사라지는데, 합창과 공연이라는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겨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희(73)씨는 “노래하면 안 늙는다는 말처럼 단원들끼리 ‘이 모습 그대로 늙지 말자’고 이야기한다”면서 “노래를 잘하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더 건강해지고 활력이 생겼다. 임종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김창윤(74)씨도 “함께 연습하는 기쁨이 일주일을 채운다”며 “공연을 보러 오는 가족들의 응원과 기대를 받는 것도 큰 행복이다”고 미소지었다.

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김형우 지휘자가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의 연습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김형우 지휘자가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의 연습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김 지휘자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에게서 긍정적 변화가 보인다”면서 “자신감 있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구로구 지역아동센터 아동들로 구성된 ‘구구단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10대부터 80대까지 전 세대가 한 무대에 서는 셈이다. 이번 음악회는 나눔의 의미도 있다.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김 지휘자는 “60~70대 단원들이 품은 삶의 궤적과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자 희망”이라며 “가곡과 대중가요, 그리고 관객이 다 함께 부르는 싱어롱 무대를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뜨거운 위로와 기쁨을 선사하고, 수익금 기부를 통해 나눔의 가치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

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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