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날과 씨' 2026 철사, 털실, 요령, 가변 설치 © 뉴스1 김정한 기자
제주 고유의 신화와 아픈 역사, 그리고 현대의 혼돈을 예술적 사유로 풀어 낸 3인의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18일 제주 비엔날레 전시 현장 '원도심 이야'에서는 '큰 할망의 배꼽: 신화 디어티즈(Deities)' 섹션에 참여 작가 곽윤주, 김영화, 손유진의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이들은 지역의 기억과 신화적 서사를 동시대적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작 배경을 풀어놨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통해 원도심 공간과 맞닿은 현실의 문제를 각자의 삶과 엮어내며 오늘날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서울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활동하는 곽윤주 작가는 "건축과 역사적 아카이브를 추적하다 제주에 닿았다"며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어진 네덜란드 군사 건물에서 시작된 탐구는 인도네시아 식민 지배 역사와 한국전쟁을 거쳐 제주의 무덤과 영등굿으로 확장됐다"고 밝혔다.
박 작가는 제주 전역에 무심하게 퍼져 있는 무덤과 지워진 4·3의 흔적을 조사하며 신방의 제례 행위에 주목했다. 그는 "사라진 자료들을 마주하며 신방이 굿을 하는 몸짓과 소리에서 보이지 않는 역사와 오늘날의 혼돈을 연결할 실마리를 찾았다"고 밝혔다.
김영화 작가는 "15년 넘게 오간 4·3 유적지와 제주의 숲, 그리고 수백 년의 시간을 버텨낸 녹나무를 화폭과 설치 미술로 끌어들였다"며 "800년 수령의 한라 순력도 속 나무처럼 역사의 비극과 학살을 묵묵히 지켜본 존재를 통해 시간의 순환성을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나무와 실' 연작에 대해 그는 "나무라는 수직적 시간의 축에 사람들의 수평적 이야기와 기도를 실로 엮어낸 것"이라며 "신화 속 원형의 기억을 더듬으며 혼돈의 현실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손유진 작가 '천지왕본풀이' © 뉴스1 김정한 기자
제주 출신으로 영국 유학을 거친 신진 손유진 작가는 "개인의 서사와 제주의 거대 담론, 그리고 전승 신화를 결합한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며 "천지왕본풀이 등 구전 신화의 유동성에 매료되어 자신의 일상적 기록과 감정을 신화적 모티브와 교차시켰다"고 설명했다.
손 작가는 "신화는 비사실이지만 개인의 경험은 명확한 사실이며, 둘이 섞일 때 생기는 모호한 경계가 흥미롭다"며 "척박한 환경과 숱한 침략, 유배의 역사 속에서 이야기를 짓고 상상했던 것은 제주 사람들이 절망 속에서도 품었던 희망의 몸짓"이라고 짚었다.
제주의 신화가 지닌 특수성이 어떻게 세계적인 보편성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작가들은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천상에 군림하는 거대한 신이 아니라, 1만 8000명에 달하는 제주의 신들은 부엌과 마당, 나무와 바위 등 척박한 자연과 일상에 밀착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에 따르면, 제주의 신들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내야 했던 환경의 산물이다. 이러한 점이 오히려 오늘날 환경 파괴와 단절이라는 전 지구적 위기 속에서 누구에게나 가닿는 보편적 울림을 지닌다는 설명이다.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진 상처를 신방의 구술과 의례가 보듬듯, 세 작가의 작업은 역사의 파편과 신화를 예술이라는 새로운 알레고리로 복원해 냈다. 지역의 특수성에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의 무기력과 단절을 치유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땅을 딛고 서서 미래를 응시하는 단단한 성찰의 계기를 던져준다.
한편,제5회 제주비엔날레는 지난달 25일 개막해 11월 15일까지 83일 동안 제주 전역을 미술 무대로 물들인다.제주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테마로'허끄곡 모닥치곡 이야홍 : 변용의 기술'를 설정해 전 세계 20개국에서 69개 팀의 작가들이 참여해 미술 축제를 펼친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