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립나주문화연구소 관계자들이 실체현미경을 통해 유물을 확인하고 있다. 국립나주문화연구소는 나주 금성산에서 발견된 화약 무기 '황자화통'을 조사해 몸체에 새겨진 28자의 명문(글자)을 확인했다. '황자화통'은 고려 말~조선 초에 만들어진 소형 화약 무기 실물이자 한국 화기 발달사를 새롭게 쓸 보물급 자료로 평가된다. (사진=연합뉴스)
화통은 화약으로 화살이나 탄알을 내쏘는 무기를 뜻한다.
이번에 공개된 ‘황자화통’ 몸체엔 28자의 글자가 새겨 있다. 이를 판독한 결과 27자는 “정사년 12월에 황자화통을 만들었다. 무게는 1근 14량이다. 감독자는 녹사 안휴보이고, 장인은 석이다”로 풀이된다. 총부리에 새겨진 ‘팔(八)’은 별도의 제작 번호 또는 관리 번호로 추정된다.
어창선 학예연구실장은 “제작 시기와 무기 명칭, 무게, 감독자와 장인의 이름까지 담긴 이 명문은 국가가 무기 제작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했는지를 보여준다”며 “유물 출토 정황이 확실해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들고 썼는지 완벽하게 입증할 수 있는 출토품은 지극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유물이 제작된 연도는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몸체에 새겨진 ‘정사년’을 근거로 1377년(고려 우왕 3년) 또는 1437년(조선 세종 19년) 두 시기로 좁혀진다. 다만 1377년이든 1437년이든 국내에서 발견된 화약무기 중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1377년은 최무선의 건의로 화통도감이 설치돼 국가 차원에서 처음 화약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이며, 1437년은 세종대 화약무기 개량이 활발히 이뤄지던 시기다. ‘황자화통’은 화약과 발사체를 하나의 통에 넣어 발사하는 형태로, 세종대 개량된 화기와는 뚜렷하게 다르다.
형태 등으로 미뤄 보아 ‘황자화통’은 단발성 무기임으로 추정된다. 실제 성능을 입증하는 실증 연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어 실장은 “화약을 다루기 위한 규제와 절차가 엄격해 짧은 시간 내 실험으로 증명하지는 못했다”며 “다만 조선시대 기록을 참고하면 유사한 형태의 화기가 방패 3개를 뚫었다는 기록이 있어, 기존 화살보다 화력과 사거리 모두에서 앞섰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황자화통(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이날 추가 발굴과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발견 장소인 금성산 일대는 여전히 미확인 지뢰지대로 묶여 있어 조사에 어려움이 있다. 나주연구소 관계자는 “지뢰 탐지가 끝난 반경 5m 정도까지만 조사가 가능했고, 그 이상은 철조망으로 막혀 있어 추가 유물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군의 협조를 얻어 조사 가능한 범위 내에서 정밀 조사를 추진하고, 유의미한 성과가 나오면 지뢰 탐지 범위를 넓혀가며 조사 범위도 확대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작 연도를 1377년과 1437년 중 어느 한쪽으로 특정하기 위해서도 비교 자료 확보가 관건으로 꼽혔다. 연구소 관계자는 “형식학적으로는 세종대 개량 이전의 전통이 유지될 수 있어 두 시기를 열어둔 상태”라며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더 나온다면 정확한 시기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오늘 처음 공개되는 황자화통이 우리나라 화약무기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선조들의 기술과 지혜가 오늘날 세계가 주목하는 K방산의 주역이자 방위산업 강국 대한민국을 탄생시켰음을 느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황자화통 발사 원리 (사진=국립나주문화유산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