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호득이 서울 종로구 아트사이드갤러리 개인전 ‘-빼고 또 빼고-’에 건 자신의 작품 중 한 점을 올려다보고 있다. 폭포를 테마로 삼은 이번 전시에 딱 한 점인 ‘흐름’(2025, 250×157㎝·오른쪽)이란 작품명을 달고 있다. 개인전에 내건 회화 23점 중 일필휘지에 맡긴 응축된 표현으로 볼 때 “가장 흡족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 옆으로 ‘폭포’(2026, 250×157㎝)가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참 기가 막힌 노릇이다. 여기까지 당도하는 동안 알록달록한 유혹이 좀 많았나. 휘황한 색과 세련된 형체가 쉴 새 없이 눈길·발길을 잡아끌어댔다는 얘기다. 그런데 결국 멈춰 선 곳의 눈앞에는 색도 없고 형도 없고 오로지 먹선 하나뿐이니.
김호득의 ‘폭포’(2026, 250×157.7㎝). 공중에서 내리꽂힌 폭포수가 바위에 부딪힌 뒤 물길을 바꾼 형상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잡다한 욕심, 장치와 장식이 많을수록 차원이 낮아져. 자꾸 왜곡도 생기고. 핵심만 뚫으면 돼. 그러면 그림의 정수를 표현할 수 있는 거야. 그 핵심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그걸 많이 생각하고 연구했어, 내내.”
이 몇 마디 말에 다 담겨 있다. 한국 현대 수묵화를 대표하는 이 대가가 평생 무수히 들었다 놨다 했을 붓의 무게가 말이다. 그게 얼마만큼 묵직할지는 알 수가 없다. 아무도 대신 들어준 적이 없으니까.
작가 김호득이 아트사이드갤러리 개인전 ‘-빼고 또 빼고-’에 건 자신의 작품 앞에 섰다. 왼쪽과 오른쪽 두 점 모두 ‘폭포’(2026, 250×157.7㎝)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 의미는 전시명에 고스란히 실렸다. ‘-빼고 또 빼고-’다. 그냥 ‘빼고’만 해도 됐을 것을 굳이 빼기(-)라는 기호를 앞뒤로 붙여내기까지 했는데. 이게 끝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반복하겠다는 의지를 심어냈다는 거다. 그런데 말이다. 그렇게 다 빼고 나면 도대체 뭐가 남는가.
“먹 작업을 할 땐 농담을 잘 내는 게 다양한 표현을 위한 필수적인 장치야. 색을 입히는 것도 비슷하지. 그런데 그 농담을 뺐어. 색도 뺐고. 물론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풍부하고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고 할까. 결국 먹선만 남겼지.”
김호득의 ‘폭포’(2025, 161.3×84.5㎝)와 ‘폭포’(2025, 161.3×84.5㎝). 내리꽂힌 폭포수가 잠시 숨을 고르며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 형상이다. 두 점으로 나눠 그리고 나란히 걸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대학 때 이미 ‘수묵=한지’의 틀을 깨
작가 작업을 굳이 한마디로 정리해야 한다면 ‘먹을 들이킨 붓의 기세를 거침없이 꺼내놓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붓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일필휘지로 단단하게 기둥을 세우고, 도약을 위해 힘을 응축한 듯한 점을 찍고, 그 과정에서 튀고 흩뿌려지는 먹물로 여백을 대신한다. 전통 수묵의 기법을 극대화해 현대 추상의 영역으로 과감하게 전진한 ‘방대한 수묵추상’이라고 할까.
김호득 개인전 ‘-빼고 또 빼고-’의 전경. 바깥쪽으로 ‘계곡’(2026, 250×157.7㎝)이, 안쪽으로 ‘폭포’(2026, 160×126㎝)가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김호득 개인전 ‘-빼고 또 빼고-’의 전경. 아트사이드갤러리 3층 공간인 아트사이드 템포러리를 통째로 작가의 설치작업 ‘찰나’(2026, 가변크기)로 꾸렸다. 발코니 너머 펼쳐진 북악산 전경과 전시장 안의 먹선이 드라마틱한 조화를 만들고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김호득이 개인전 ‘-빼고 또 빼고-’에 설치한 ‘찰나’(2026, 가변크기) 앞에 앉았다. 프레임에 가두지 않고 풀어헤친, 날 것 그대로의 붓을 휘두른 그림으로 벽과 기둥을 감쌌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렇다고 흔히들 말하는 ‘전통의 현대화’로 퉁칠 생각은 없다고 했다. “동양화만 하면 획을 알아도 면은 모르지. 서양화만 하면 선을 알지만 획은 모르고. 게다가 동양은 정신, 서양은 물질이 바탕이지 않아? 그런 구분도 없이 겉으로만 뒤섞어 놓고 전통의 현대화라고 하면 그건 안 되지.”
김호득의 ‘폭포’(2026, 250×157.7㎝). 캔버스도 한지도 살 돈이 없어 대학 시절부터 쓰기 시작했던 광목을 작가는 지금껏 그림의 바탕으로 삼는다. 한지와 비슷한 느낌을 내면서도 과한 선을 견뎌낸다고 귀띔했다(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김호득이 개인전 ‘-빼고 또 빼고-’에 건 자신의 작품들 앞에 서서 환하게 웃었다. 왼쪽은 ‘폭포’(2026, 250×157.7㎝), 오른쪽은 ‘폭포’(2025, 161.3×84.5㎝)(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무의 경지는 목적일 뿐 목표는 될 수 없어
7년 만의 개인전이다. 그냥 전시만 쉬었던 기간은 아니다. 몸과 마음의 병에 시달렸으니까. 식도암·폐암 등으로 쇠약해진 몸에 폐렴이 덮쳤더랬다. 하지만 몸의 병을 극복하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일은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는 일이었다고 했다. 발단이라면 2019년 개인전이었다는데. “뺀다고 뺐던 작업이 말이야. 실험의 막바지라고 생각했는데 무르익지도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어. 새로운 시도였고 기대도 컸는데. 그래서 사실은 화병이 났던 거지. 일기 쓰는 것처럼 매일 작품 하나씩 그려서 올리던 소셜미디어를 딱 끊으니까 다들 ‘죽었나?’ 하며 궁금해하더라.”
작가 김호득이 개인전 ‘-빼고 또 빼고-’에 설치한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내가 쌓아온 미감을 믿는다”면서도 “그래도 딱 망했다 싶을 때가 있는데, 단 몇 초 만에 결정된다”고 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리(세대)는 자기 수양하는 걸 도 닦는다고 하는데. 아무리 도를 닦아도 공허함이나 마지막 욕심에서는 완벽하게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 무의 경지는 그 자체가 목적일 뿐 목표는 될 수 없어. 아직 결론이 안 난 거야. 죽기 전에 그 결론이 날지 모르겠지만 살아 있는 걸 증명하는 정도만 돼도 이젠 괜찮아. 아등바등 안 해” 전시는 10월 17일까지.
김호득 개인전 ‘-빼고 또 빼고-’의 전경. 한 관람객이 전시장을 천천히 옮겨 다니며 작가의 작품 한 점 한 점 앞에 오래도록 머물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