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현_Untitled 72-3 (B)_1972 (국제갤러리 제공)
아흔을 넘긴 한국 추상미술 대가 하종현의 손끝에서 피어난 현대미술의 진수가 북미 대륙을 찾는다.
23일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Asian Art Museum)은 25일부터 2027년 1월 25일까지 '하종현: 회고전'(Ha Chong-Hyun: Retrospective)을 연다. 북미 기관에서 처음으로 마련한 하종현의 대규모 전시다.
이번 전시의 핵심은 6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하면서도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1960년대 초창기 실험작부터 2025~2026년에 걸쳐 완성한 최신 회화까지 총 50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흔히 단색화 대가로만 알려진 그를 전후 한국 현대미술의 경계를 넓힌 선구자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자리다.
샌프란시스코 아시아 미술관 '하종현 회고전' 설치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1935년생인 하종현은 1969년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를 만들며 신문과 철조망 같은 일상 사물로 파격적인 실험을 펼쳤다. 특히 1974년 마대 뒤편에서 물감을 앞으로 밀어내는 '배압법'을 창안해 대표작 '접합' 연작을 일궜다. 물감을 캔버스 표면에 칠하는 서양식 방식과 달리, 캔버스 뒷면의 압력과 화폭의 저항을 그대로 드러내며 노동의 흔적을 화면에 새겨 넣었다.
서구 미니멀리즘이 깔끔하고 매끄러운 산업적 완성을 좇았다면, 하종현의 회화는 거칠고 불완전한 상태를 숨기지 않는다. 이는 서구 중심의 미술사를 넘어 지역의 고유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 독창적 모더니즘의 가치를 증명하는 대목이다.
전시 기획에 힘을 보탠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은 "그를 특정 미술사조에 가두기보다 한국 사회의 굴곡 속에서 회화의 틀을 깬 모험가로 읽어야 한다"고 전했다.
하종현_Conjunction 26-14, 2026 (국제갤러리 제공)
이소영 아시아 미술관장은 "기존의 관념을 뒤흔드는 날것 그대로의 강렬함을 전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종현 역시 "아흔의 나이에 미국 문화의 심장부에서 여는 이번 자리가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작업실에서 치열하게 흘린 땀방울과 현재의 호흡을 전하는 무대"라며 소회를 밝혔다.
서울시와 샌프란시스코의 자매결연 50주년에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국 추상미술의 깊이를 세계에 각인시킬 중요한 전환점이다.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묵묵히 밀어 올린 그의 우직한 노동은 시대를 뚫고 나와 세계 미술사의 한복판에 잔물결을 만들어낸다.
acenes@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