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치킨이라고?”…수원 통닭거리 'K미식벨트' 가보니 [르포]

생활/문화

이데일리,

2026년 September 24일, AM 09:08

[수원=이데일리 오희나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을 타고 퍼지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침샘을 자극하는 이 맛있는 냄새의 주인공은 ‘수원 통닭’. 과거 특별한 날이면 온 가족이 오손도손 모여 나눠 먹던 바로 그 메뉴다.

수원화성행궁 (사진=오희나 기자)
수원화성행궁 (사진=오희나 기자)
◇가마솥 기름 소리에서 시작된 서민 음식

수원이 미식과 관광의 도시로 성장한 바탕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음식 문화가 있다. 수원 통닭거리의 역사는 1970년대 ‘매향통닭’에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통닭은 특별한 날 가족끼리 나눠 먹거나 퇴근길 아버지가 사 들고 오던 음식이었다. 가마솥에서 갓 튀겨낸 통닭 한 마리는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채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통닭거리의 메뉴도 진화했다. 1980~1990년대 진미통닭, 용성통닭, 장안통닭 등 여러 점포가 하나둘 문을 열면서 지금의 통닭골목이 형성됐다. 옛날 방식의 가마솥 통닭이 골목의 전통을 지키는 사이 수원왕갈비통닭 등 각종 양념치킨이 더해져 새로운 미식 경험을 만들어냈다.

오랜 시간 지역 주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수원의 대표적인 미식 공간이 된 것이다. 수원시는 이러한 점에 착안해 ‘치킨과 함께하는 K헤리티지 미식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치킨 만들기와 역사·문화 체험, 통닭거리 맛보기, 지역상권 소비로 이어지는 미식벨트 스토리로 엮은 상품이다.

남문통닭 김경재 대표와 이재준 매니저 (사진=오희나 기자)
남문통닭 김경재 대표와 이재준 매니저 (사진=오희나 기자)
◇먹는 즐거움에 직접 만드는 재미도

K미식벨트의 첫 목적지는 ‘국립농업박물관’이었다. 농업의 역사와 식재료를 살펴보는 해설 투어에 이어 교육동에서 진행된 ‘나만의 치킨 만들기’ 체험에 참여했다. 수원 통닭거리에서 남문통닭을 운영하는 김경재 대표에게 치킨의 역사와 조리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이다.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 서서 닭을 조리하고 특제소스를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면서 치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할수 있었다. 특히 통닭거리 대표 상품인 왕갈비통닭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요리 체험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치킨을 만들어온 노하우를 직접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준 남문통닭 매니저는 직접 준비해온 닭에 흠집을 내고 치킨파우더에 버무리며 조리를 시작했다. 끓는 기름에 뼈있는 부위는 8분, 순살은 6분. 노릇노릇하게 익은 치킨을 비법 소스에 버무려 맛깔나는 왕갈비통닭이 완성된다.

참가자들은 직접 통닭에 양념을 입히고 오븐에 구우며 왕갈비통닭을 만들었다. 빵에 샐러드를 곁들여 왕갈비통닭을 함께 먹으면 더 맛있다고. 김 대표는 “예로부터 수원은 소 거래가 많아 갈비가 유명했다”면서 “지금은 각각의 가게들이 비법과 노하우들로 색깔을 내면서 거리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 통닭거리 (사진=오희나 기자)
수원 통닭거리 (사진=오희나 기자)
◇통닭거리 10개 통닭집…맛도 모양도 각약각색

치킨 만들기를 마친 뒤 향한 곳은 수원 통닭거리였다. 10개 통닭집의 치킨을 한자리에서 맛볼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황금빛 튀김옷을 입은 후라이드부터 진한 양념을 머금은 치킨, 마늘과 파, 김치 등 재료를 곁들여 풍미를 더한 메뉴까지. 접시마다 다른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 점씩 맛을 비교하다 보니 같은 치킨이라는 이름으로 묶기 어려울 만큼 차이가 났다. 튀김옷의 바삭함과 닭고기의 식감, 양념의 농도와 풍미가 점포마다 달랐다.

수원 통닭거리 대표 통닭집 10곳 (사진=오희나 기자)
수원 통닭거리 대표 통닭집 10곳 (사진=오희나 기자)
남문통닭의 수원왕갈비통닭은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갈비 양념이 치킨과 어우러지는 맛이 특징이다. 진미통닭의 진짬뽕통닭은 얼큰하고 매콤한 풍미로 차별화를 꾀했다. 용성통닭과 장안통닭에서는 후라이드와 옛날식 양념통닭의 매력을 비교해볼 수 있었다.

매향통닭의 가마솥 옛날 통닭은 얇고 고소한 껍질의 매력을 살렸고, 혜미통닭은 알싸한 파채와 간장 소스의 조화가 돋보였다. 정조·수원·행궁·대봉통닭 등 다른 점포에서도 닭강정부터 고추 간장치킨, 매콤통닭까지 각기 다른 맛을 선보였다.

10개 점포의 치킨을 차례로 맛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맛의 다양성이었다. 전국 어디서나 비슷한 메뉴와 맛을 만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치킨과 달리, 이곳에서는 가게마다 쌓아온 조리법과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떤 치킨은 튀김의 고소함이 입안을 채웠고, 어떤 치킨은 양념의 달콤함과 매콤함이 입맛을 자극했다. 같은 닭고기를 사용해도 조리법과 양념에 따라 전혀 다른 음식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집에서 한 가지 메뉴를 먹고 나오는 일반적인 외식과 달리 여러 가게의 치킨을 비교하며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수원 통닭거리에서는 치킨을 먹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여행 콘텐츠가 되는 셈이다.

드라마 대장궁을 촬영했던 수원 화성행궁 (사진=오희나 기자)
드라마 대장궁을 촬영했던 수원 화성행궁 (사진=오희나 기자)
◇통닭 먹고 화성행궁 걷고…미식·역사 한눈에

치킨으로 배를 채운 뒤에는 화성행궁으로 향했다. 통닭거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화성행궁은 수원화성과 함께 수원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관광자원이다. 정조의 효심과 개혁 의지가 담긴 화성행궁을 거닐며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다 보면 수원이 단순한 미식도시를 넘어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임을 실감하게 된다.

통닭거리에서 치킨을 맛보고 화성행궁에서 역사를 만나는 코스는 수원의 장점을 잘 보여준다. 음식과 역사문화자원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하루 일정 안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원화성 성곽길과 행궁동 일대까지 더하면 미식 중심의 여행을 지역 탐방으로 확장할 수 있다. 먹거리와 역사문화자원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추진하는 2026년 K미식벨트 사업에 수원이 선정된 것도 이러한 지역 자원의 연결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치킨과 함께하는 K헤리티지 미식여행’을 통해 치킨 만들기, 역사·문화 체험, 통닭거리 맛보기, 지역상권 소비로 이어지는 치킨벨트 스토리를 구축하고 있다.

특정 프랜차이즈나 단일 음식점 중심의 체험이 아닌 수원 통닭거리라는 지역상권 자체를 하나의 관광콘텐츠로 상품화하고, 수원화성·화성행궁 등 수원 고유의 역사문화자원과 결합해 ‘K치킨+K-헤리티지’가 공존하는 체험형 미식관광 콘텐츠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프로그램은 △농업·치킨·수원화성을 연결한 ‘수원 치킨 로드’ △교촌1991스쿨과 수원 관광자원을 연계한 ‘K헤리티지 치킨 로드’ △수원 통닭거리 축제와 야간관광을 결합한 ‘수원 통닭거리 치킨 나이트’ 등 3개 콘텐츠로 구성된다. 올해 시범운영을 바탕으로 향후 축제와 지역관광자원을 연계한 체류형 미식관광 콘텐츠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수원문화재단 관계자는 “수원 통닭거리가 단순히 통닭을 먹는 장소를 넘어 수원의 역사와 문화, 체험을 함께 즐기는 미식관광 목적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지역상권과 관광자원이 함께 성장하는 수원형 미식관광 모델로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약 및 자세한 사항은 수원문화재단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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